세상을 변화시키는 연구란 무엇인가
연구자는 넘쳐나는데, 문제는 왜 해결되지 않을까
지난 글에서 우리는 질문했습니다. 수만 명의 연구자와 수조 원의 연구비가 있는데도 왜 사회문제는 해결되지 않는지. 저희는 이러한 문제의 원인은 연구의 '양'이 아니라 '방향'이라고 제시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방향의 연구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를 예언자적 연구(Prophetic Research)라고 부릅니다. 기존의 패러다임을 고수하며 그 안에서 정당성을 만드는 존재가 아닌, 예언자는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보며 다음의 패러다임을 향한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들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변화를 촉발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의 연구도 그래야 하죠. 현실을 관찰하는 것을 넘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해야 합니다. 지식을 생산하는 것을 넘어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논문을 쓰는 것을 넘어 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직접적인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연구란 무엇인가
예언자적 연구를 이해하려면 먼저 '연구란 무엇인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연구는 단순히 지식을 생산하는 과정이 아닌, 상상과 현실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한마디로 <Imagination in Reality, 현실 속의 상상>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이론과 현장 사이에서
연구자에게는 각자의 연구현장이 있습니다. 그 현장은 연구되기 전까지는 미지의 세계죠. 하지만 현장을 인식하려면 현장을 보는 '이론'이 필요합니다. 이론 없이는 현장을 볼 수 없으니까요.
예를 들어볼게요. "왜 청년들이 결혼을 미루는가"를 연구한다고 해본다면, 처음에는 막막합니다. 결혼을 미루는 현장은 복잡하고 혼란스럽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게 바로 이론입니다. 경제학 이론으로 보면 "소득 불안정 때문"이고, 사회학 이론으로 보면 "결혼 인식의 변화 때문"이며, 심리학 이론으로 보면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머릿속에서 현장을 상상하고 이해합니다. 이것이 상상계입니다. 동시에 현장은 우리의 이해와 상관없이 명백하게 존재합니다. 이것이 실재계입니다.
연구자는 이론의 틀 안에서 현장을 바라보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실제 청년들을 만나고 데이터를 모으면 어떻게 될까요? "어? 내가 생각했던 이론만으로는 설명이 안 되네. 주거비 문제가 생각보다 훨씬 크네" 같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발견이 다시 새로운 이론이 되는 거죠.
이렇게 이론과 현장 사이를 오가며 얻은 '새로운 사실'을 일정한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 그것이 연구입니다. 한 번에 완성되는 게 아니라, 생각하고 → 확인하고 → 다시 생각하고 → 다시 확인하는 순환 과정입니다.
데이터에서 지식까지
그렇다면 이론과 현장의 상호작용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일어날까요?
Data → Information → Knowledge → Wisdom
현장의 모든 요소들은 '데이터'로 존재합니다. 숫자, 말, 경험, 감각 모두가 데이터입니다. 이 데이터들에 '맥락'이 추가되면 '정보'가 됩니다. 어느 맥락 위에 있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죠.
그리고 이 정보들 사이의 관계를 파악하고 '의미'를 얻을 때 우리는 그것을 '지식'이라고 부릅니다. A라는 정보와 B라는 정보 사이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그 관계들의 집합을 통해 'A는 B이다'라는 명제를 검증하게 되었을 때, 그것이 지식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관계'를 설정할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이론'이라는 점입니다. 왜 A와 B가 인과관계인지, 상관관계인지를 파악할 때 이전 지식의 이론을 활용합니다. 존재하는 관계들 속에서 새롭게 관계를 정의하는 것, 그것이 지식의 탄생입니다.
비판과 창의 사이에서
지식은 두 가지 사고를 거쳐 탄생합니다.
Critical Thinking(비판적 사고)는 덩어리째 인식되는 현장을 하나하나의 '데이터'로 쪼개는 작업입니다. 막연하게 인식되어 오던 현장을 분해하고 해체합니다.
Creative Thinking(창의적 사고)는 쪼개진 정보들을 다시 연결하고 합치는 것입니다. 이론을 통해 새로운 관계들을 찾아서 연결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보들은 새로운 관계 속에서 그 의미가 재해석되며, 그렇게 재해석된 정보의 의미를 우리는 '인사이트'라고 부릅니다.
예언자적 연구는 무엇이 다른가
그렇다면 예언자적 연구는 일반적인 연구와 무엇이 다를까요?
목적: 이해 vs 변화
기존 연구는 "세상에 대한 이해"를 목적으로 합니다. 현장을 절대화하고 연구공동체가 현장에 대한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고 '검증'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예언자적 연구는 "보다 나은 세상으로의 변화"를 목적으로 합니다. 변화의 방향과 변화에 필요한 현장지식을 발굴하고 이해하는 과정입니다. 지식이 단순히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의미 부여 그 자체가 현실의 변화 방향을 제시합니다.
정체성: 관찰자 vs 당사자
기존 연구에서 연구자는 현장의 '관찰자'입니다. 객관적 거리를 유지하며 현장을 분석합니다. 연구자의 개인적 감정이나 동기는 연구의 '편향'으로 여겨집니다.
예언자적 연구에서 연구자는 문제해결의 '당사자'입니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진심, 현장에 대한 깊은 사유와 애정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연구자의 동기와 감정은 연구의 편향이 아니라 연구의 힘입니다.
시작점: 학문적 공백 vs 현장의 필요
기존 연구는 학문적 공백에서 시작합니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주제', '기존 이론의 모순', '새로운 현상의 발견' 등이 연구의 계기가 됩니다. 연구공동체 내부의 논리가 연구주제를 결정합니다.
예언자적 연구는 현장의 필요에서 시작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 '고통받는 사람들', '변화가 필요한 현장'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현장의 목소리가 연구주제를 결정합니다.
연구는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
연구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현실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핵심은 시간 축에 있습니다. 연구를 통해 현장의 각 요소들이 의미와 맥락을 부여받는 순간, 그 지식을 획득한 사람들의 행동은 지식이 부여한 의미와 맥락 하에서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청년 빈곤'을 단순히 개인의 능력 부족으로 이해하는 것과 구조적 불평등의 결과로 이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대응을 낳습니다. 전자는 개인의 자기계발을 강조하고, 후자는 구조적 개혁을 요구하죠.
현장이 어떻게 이해되고 의미되는가에 따라 현장의 변화 방향도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연구는 수동적으로 현실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의미 부여 그 자체가 현실의 변화 방향을 특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연구가 '예언자적'이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예언자의 말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미래를 만들어가는 선언이듯, 연구자의 지식은 현실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예언자적 연구 4단계 프로세스
우리는 예언자적 연구를 하기 위한 4단계의 프로세스는 제안합니다.
1) 진심 Integrity
연구의 시작은 연구자의 '진심'입니다. 왜 이 문제를 연구하는가?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왜 바라는가? 연구자의 개인적 동기와 감정, 현장에 대한 애정이 연구의 출발점입니다.
이 진심을 구체화한 것이 '연구비전'입니다. 이 연구를 통해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은가? 어떤 세상을 꿈꾸는가? 연구비전은 연구의 나침반이 되어줍니다.
2) 이론 Theory
진심을 바탕으로 연구비전을 설정했다면, 이제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학습합니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원적 평등'의 원칙입니다.
기존 연구가 하나의 학문 전통에 갇혀 있다면, 예언자적 연구는 문제 해결에 필요한 모든 지식 전통에 접속합니다.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정책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필요한 이론을 학습합니다.
3) 방법론 Method
다양한 이론을 학습한 후에는 각 이론에 맞는 방법론으로 연구를 수행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분리의 기술입니다.
각 이론 전통의 일관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연구비전을 중심으로 이들을 조합합니다. 하나의 연구비전 아래 여러 개의 개별 연구가 수행되고, 각 연구는 자신의 방법론적 엄밀성을 유지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애자일 연구의 방식을 취합니다. 완벽한 하나의 연구를 만들기보다는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반복하며 점차 발전시킵니다.
4) 전달 Delivery
마지막으로 연구 결과를 전달하는 단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성과 감정, 의지를 모두 담아내는 것입니다.
단순히 객관적 사실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이 소리치는 감정, 연구자의 의지까지 담아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식을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식'이라고 부르며, 이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을 변화시키는 '살아있는 지식'이 됩니다.
끝내며
지금까지 우리는 예언자적 연구가 무엇인지, 일반 연구와 무엇이 다른지, 어떤 프로세스로 수행되는지 살펴봤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자는 어떻게 양성될까요? 기존의 대학원 시스템으로는 가능할까요?
다음 글에서는 문제를 푸는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기존 연구자 양성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 그리고 연구탐사대가 제안하는 대안을 나누겠습니다.
참고자료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4).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Rittel, H. W., & Webber, M. M. (1973). Dilemmas in a general theory of planning. Policy sciences, 4(2), 155-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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