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탐사대
← 블로그로 돌아가기

문제를 푸는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존 연구자 양성의 한계와 새로운 가능성


지난 글에서 우리는 예언자적 연구가 무엇인지, 어떤 프로세스로 수행되는지 살펴봤습니다. 진심에서 출발해 이론을 학습하고, 방법론을 적용하고, 살아있는 지식으로 전달하는 4단계 프로세스를 말이죠. 하지만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이런 연구를 할 수 있는 연구자는 어떻게 양성될까요?"

기존의 대학원 시스템으로는 가능할까요?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방식이 필요할까요?

대학원 시스템에서 포착되지 않는 것들

1) 학과 중심 vs 문제 중심

현재 대학원은 '전공' 중심으로 운영됩니다. 경제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각 학과는 자신의 학문 전통 안에서 전문가(Specialist)를 양성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후위기를 다루려면 환경과학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경제, 정치, 사회, 기술, 문화 — 이 모든 영역의 지식이 동시에 필요해집니다.

청년 주거문제를 이해하려면 부동산 정책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노동시장, 가족구조, 금융시스템, 그리고 청년들의 심리와 문화까지 함께 들여다봐야 할 필요가 생깁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학과라는 울타리 안에서 연구자를 양성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물론 학회활동을 통해 주제 중심의 연구를 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이미 특정 영역에 특화된 전문가가 통합적 사유의 장에 초대되었을 때, 그 사유의 방식 자체가 전환될 수 있는지는 다시 생각해볼 지점입니다.

2) 발견 중심 vs 해결 중심

학술연구에서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현상의 발견'이라는 관점이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습니다.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새로운 관계를 밝히고, 지금껏 아무도 연구하지 않은 영역을 개척하는 것. 이것이 학계에서 인정받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원생들은 고민합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걸 찾을 수 있을까?" "아직 연구되지 않은 주제가 뭐가 있을까?"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관찰이 가능해집니다. '새로운 것'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가 상대적으로 축적되지 못하는 영역이 생겨났다는 점입니다.

전세사기 문제를 기억하시나요? 2023년 한 해 동안 정부가 여러 번 대책을 내놓고 국회가 특별법을 제정했지만, 정작 정부와 국회 차원의 제대로 된 실태조사조차 없었습니다. 가장 필요했던 그 조사는 민간 싱크탱크인 한국도시연구소가 수행했습니다. (오마이뉴스, 2024)

실태조사는 '새로운' 연구가 아니기에 학문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어려울 수 있느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가장 필요한 연구였습니다.

연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가장 근원적인 목적은 무엇일까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는 것일까요?

3) 위성 vs 행성

기존 연구 생태계에서는 학벌, 소속, 논문 실적으로 연구자의 가치를 판단하는 구조가 작동해왔습니다. 어느 대학 출신인지, 어느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는지,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지. 이것이 연구자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이런 시스템에서 독립 연구자는 어떤 위치에 놓일까요? 중심 행성 주변을 맴도는 위성같은 존재로 배치됩니다. 인정받기 위해서는 결국 어딘가에 소속되어야 하고, 기존 시스템의 평가 기준을 따라야 하는 구조가 유지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무엇을 연구하고 어떻게 문제에 접근하는지가 아닐까요? 어디 출신이고 어디 소속인지가 아니라, 문제를 진심으로 풀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 문제 해결 역량이 더 본질적인 기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존재하는 지식 주변부를 배회하는 연구가 아니라, 아직 풀리지 않은 그 미지의 영역을 기꺼이 탐사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위성이 아닌 하나의 행성으로 존재하는 연구자들과요.

새로운 연구자 양성이 요청하는 세 가지 관점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연구자 양성이 가능해질까

1) 문제 중심의 통합적 연구

학과 중심이 아닌 문제 중심의 연구훈련 공동체라는 관점이 필요해집니다.

예를 들어 '기후위기' 문제를 연구한다면, 지구환경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예술 등 인류활동에 대한 지식,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기술 등 다양한 영역의 지식이 요청됩니다. 배움의 영역에 한계를 두지 않고, 이 문제를 연구하기 위한 지식을 함께 배우고 생산합니다. 문제가 요구하는 지식을 따라가는 것이지, 커리큘럼에 문제를 끼워 맞추는 방식이 아닙니다.

2) 도전적인 연구

도전적인 연구는 사악한 문제(Wicked Problem)에 과감하게 접근하는 연구를 의미합니다. 사악한 문제는 명확한 정의가 어렵고, 단일한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으며, 여러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쉽게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기후위기, 청년 주거문제, 교육 불평등과 같은 우리 시대의 핵심 문제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해야만 하는 과업이자 사명입니다. 문제가 어렵다는 이유로 회피하거나, '연구 가능성', '데이터 확보 가능성', '논문화 가능성'만을 고려해 쉬운 문제로 도망가지 않는 태도가 필요해집니다.

2)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연구

새로운 현상을 발견하고 정의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두지 않는 접근이 가능해집니다. 연구를 통해 지식을 생산하는 가장 근원적인 목적은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기 위함이라는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기존의 지식을 활용해도 되고, 기존의 지식으로 풀 수 없다면 새로운 탐구에 기꺼이 뛰어들어 갈 준비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것은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는가'가 아니라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는가'입니다. 연구의 목적이 개인의 학문적 커리어가 아니라 문제 해결 그 자체에 놓이게 됩니다.

3) 당사자성 기반의 연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 문제를 풀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로 그 문제를 접근하고 풀 수 있는 기술력이 함께 요청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깊이 있는 사유와 함께 우리의 사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내재적으로 존재해야 합니다. 문제해결에 대한 진심을 가진 이가 연구를 할 때, 사회문제 해결이라는 지평이 열립니다. 연구자의 가치를 학벌, 소속, 논문 실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진심으로 풀고자 하는 마음과 실제 문제 해결 역량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필요해집니다.

연구자 양성의 새로운 프로세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세스가 가능해질까요? 우리는 기존 연구자 양성 과정의 핵심을 분해하고 배제된 가치를 추가하여 재구성했습니다.

1) 진심의 발견: 왜 이 문제인가?

연구의 시작은 '왜 나는 이 문제를 연구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기존 대학원에서는 이 질문보다 '연구 가능성', '데이터 확보 가능성', '논문화 가능성'이 우선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문제 중심 연구에서는 연구자의 진심이 가장 중요한 출발점이 됩니다.

이 문제가 나에게 왜 중요한가?

이 문제가 해결되면 어떤 세상이 될까?

나는 어떤 변화를 만들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을 통해 연구자는 자신의 연구비전을 세웁니다. 이 비전이 앞으로 모든 연구의 나침반이 됩니다.

2) 이론의 학습: DIY 대학원

연구비전을 세웠다면 이제 그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을 학습하는 단계가 펼쳐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초학습법(Ultra Learning)'입니다(Scott Young, 2019). 기존 대학원처럼 정해진 커리큘럼을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연구비전에 맞춰 필요한 지식을 적극적으로 설계하는 방식입니다.

각 학문 분야의 메타지도를 파악하고, 내 연구에 필요한 부분을 선택적으로 학습합니다.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필요한 이론을 익힙니다.

이것이 바로 'DIY 대학원'입니다. 정해진 대학원 과정이 아니라, 나의 연구비전을 중심으로 필요한 지식들을 조합해서 나만의 커리큘럼을 만드는 접근입니다.

3) 방법론의 실천: 애자일 연구

이론을 학습했다면 이제 실제로 연구를 수행하는 과정이 시작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애자일 연구(Agile Research)' 방식입니다. 완벽한 하나의 연구를 만들려고 몇 년을 투자하는 게 아니라, 작게 시작하고 빠르게 반복하며 점차 발전시키는 방식입니다.

연구비전을 설정하고 → 가장 작은 단위의 연구를 설계하고 → 실제로 수행해보고 → 결과를 보며 배우고 → 다시 설계하며 사이클을 빠르게 반복합니다.

소프트웨어 개발에서 말하는 '워터폴(Waterfall) 방식'이 아니라 '애자일(Agile) 방식'입니다. 완벽을 추구하기보다는 빠른 실험과 학습을 통해 점진적으로 발전시키는 구조입니다.

4) 지식의 공유: 솔루션IP

마지막으로 연구 결과를 공유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여기서 핵심은 '논문'이 아니라 '솔루션IP'를 만드는 것입니다. 솔루션IP란 문제정의 → 탐사 → 분석 → 대안 설계의 전 과정을 담은 구조화된 산출물입니다. 학계 내부의 평가를 위한 논문이 아니라, 문제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 가능한 지식을 만듭니다. 이것이 연구자의 신뢰자본이 되고, 소속 없이도 연구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연구탐사대가 제안하는 구조

이런 원칙과 프로세스를 실제로 구현한 것이 바로 연구탐사대입니다.

부트캠프: 연구 프로세스 훈련

12주 동안 진행되는 <연구원정> 부트캠프에서는 문제를 연구로 전환하는 전 과정을 훈련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참여자들은 자신만의 솔루션IP를 완성합니다. 이것이 연구자로서의 첫 포트폴리오가 됩니다.

  • 문제정의: 내가 정말 풀고 싶은 문제는 무엇인가?
  • 탐사: 이 문제를 둘러싼 맥락은 무엇인가?
  • 분석: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 대안 설계: 어떤 해결책이 가능한가?
  • 철학산책: 사유의 축 형성

    연구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왜 이 문제를 내가 푸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섯번째 시즌에서는 매주 토요일 아침, 한국 현대철학 텍스트를 함께 읽으며 연구자의 사유의 축을 형성합니다. 연구 기술이 흔들릴 때 기준이 되는 연구자의 내적 나침반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플랫폼: 연구자 성장 경로

    연구탐사대는 단순한 교육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연구자가 문제를 정의하고, 탐사하고, 해결 가능한 지식으로 전환하는 전 과정을 훈련하는 시스템입니다. 부트캠프를 통해 연구를 시작하고 → 철학산책을 통해 사유를 깊게 하고 → 솔루션IP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쌓고 → 웹진, 세미나, 컨퍼런스를 통해 공유하며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학벌이나 소속 없이도 연구자로 성장할 수 있는 완전히 다른 트랙이 펼쳐집니다.

    끝내며

    지금까지 우리는 왜 연구를 재정의해야 하는지, 예언자적 연구란 무엇인지, 그리고 문제를 푸는 연구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 남았습니다.

    "당신은 어떤 문제를 풀고 싶으신가요?"

    다음 글에서는 연구탐사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 그리고 이 질문을 함께 붙잡고자 하는 이들을 어떻게 초대하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연구원정 부트캠프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여기 부트캠프 10기 사전알림을 통해 가장 먼저 소식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시작일: 2월 22일)

    참고자료

  • 경제인문사회연구회 (2014). 인문사회분야 학문후속세대의 연구력 강화를 위한 실태조사 및 과제: 박사과정생을 중심으로.
  • Young, S. (2019). Ultralearning: Master Hard Skills, Outsmart the Competition, and Accelerate Your Career. HarperCollins.
  • 오마이뉴스 (2024.02.15). "전세사기 실태조사, 정부·국회는 안 하고 민간이 했다"

  • 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하는 모든 이들을 위한 연구훈련 플랫폼으로, 12주 연구훈련 부트캠프 <연구원정>과 연구자들의 사유훈련 <철학산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