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02 전통사회의 동요와 새로운 사유의 출현
조선이 흔들릴 때, 세 갈래 길이 열렸다
해당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진행하는 철학스터디, 철학산책 시즌6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인사이트글입니다.
500년 체제가 흔들리다
조선 후기, 성리학이라는 단일 운영체제로 돌아가던 사회에 균열이 생겼다. 안으로는 삼정의 문란과 민란이 이어졌고, 밖으로는 서양 열강과 일본이 문을 두드렸다.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의 사유 체계로 이 위기를 감당할 수 있는가.
보통 이 시기를 '서양 문물 수용사'로만 읽는다. 서양 것을 받아들였느냐 거부했느냐의 이분법이다. 그러나 실제로 벌어진 일은 훨씬 복잡했다. 조선 지식인들은 단순히 찬반을 나눈 것이 아니라,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바꿀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사유의 재편을 시도했다.
세 갈래 길: 수호, 절충, 전환
위기 앞에서 세 가지 사상적 대응이 등장했다.
첫째, 위정척사. "정학을 지키고 사학을 물리치자." 이항로, 기정진으로 대표되는 이 흐름은 성리학적 질서를 수호하고 서양의 모든 것을 배격했다. 단순한 쇄국론이 아니었다. 문명의 기준 자체가 성리학에 있다는 확고한 철학적 신념이었다. 문제는 이 신념이 변화하는 현실을 설명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둘째, 동도서기론. "동양의 도(道)는 지키되 서양의 기(器)는 받아들이자." 신기선 등이 주창한 이 절충안은 정신과 물질을 분리했다. 유교적 윤리와 질서는 유지하면서 서양의 기술만 도입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기술은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다. 증기선과 전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낸 사회 체제와 세계관을 함께 실어 나른다. 동도서기론은 이 사실을 간과했다.
셋째, 개화사상. 실학의 북학파 전통에서 이어진 이 흐름은 제도와 사상 자체의 근본적 전환을 주장했다. 김옥균, 박영효 등 개화파는 1874년 무렵부터 형성되어 서양의 정치 제도, 교육 체계, 경제 구조까지 전면적으로 수용하려 했다.
진짜 쟁점은 '기술'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세 갈래 길의 표면적 차이는 서양 문물 수용의 범위였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더 근본적인 질문이 있었다. 문명의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
위정척사는 성리학을 절대 기준으로 삼았다. 동도서기론은 동양의 도덕을 기준으로 유지하되 서양의 실용을 빌리려 했다. 개화사상은 기존 기준 자체를 재설정하려 했다. 결국 이 논쟁은 '무엇이 옳은 삶인가'라는 철학적 물음이 정치적 선택으로 나타난 것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세 흐름 모두 나름의 한계를 드러냈다는 것이다. 위정척사는 현실 대응력이 부족했고, 동도서기론은 정신과 물질의 이분법이 무너졌으며, 급진 개화는 민중적 기반 없이 외세에 의존하는 모순에 빠졌다.
나가며. 오래된 질문의 현재성
조선 말기의 세 갈래 길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AI가 삶의 방식을 바꾸는 지금, 우리는 같은 구조의 질문 앞에 서 있다.== 기술을 거부할 것인가, 도구로만 쓸 것인가, 삶의 기준 자체를 재편할 것인가. 150년 전 조선 지식인들이 남긴 교훈이 있다면 이것이다. ==기술의 수용 여부보다, 그 기술을 판단하는 자기 기준이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함께 나눈 생각들
기득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결정적 동력은 무엇인가? — 인식, 자본, 그리고 대안 권력
대원들의 답변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뉘었다. 첫째는 인식의 전환이 기득권을 무너뜨린다는 시각이다. 최한기가 검증 불가능한 성리학의 '무형지리'를 비판하고 경험에서 출발하는 '기학'을 제시한 것처럼, 기존 체제가 당연시하던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것이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홍대용의 '이천시물(以天視物)' 사상을 비폭력대화(NVC)의 관점으로 재해석한 논의도 있었는데, 사물을 관찰할 때 인간 중심의 평가를 배제하라는 핵심이 갈등 해결의 단초가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인식론적 전환은 라투르의 행위자-네트워크 이론, 잉골드의 질료형상론 비판, 해러웨이의 반려종 개념과도 맥이 닿아 있어, 실학의 정신이 현대 연구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는 평가로 이어졌다.
둘째는 자본과 실용의 힘이다. 사농공상에서 가장 천시하던 '상'이 사회를 이끄는 상태가 되면서 신분질서가 흔들렸듯, 경제적 변동이 기존 질서에 틈을 낸다는 시각이 있었다. 실학자들이 상업 장려와 물류 활성화를 주장하고, 실용적 기술과 정보를 널리 알림으로써 기득권의 권위를 약화시키려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투자 정보를 독점하는 소수에 의존하기보다 실제 삶을 나아지게 할 보편적 경제활성화가 필요하다는 현대적 적용도 제시되었다.
셋째는 대안 권력의 형성이다. 분노나 위기는 촉매일 뿐, 기득권 질서를 실제로 붕괴시키는 힘은 대체 가능한 구조가 등장할 때 비로소 발생한다는 분석이었다. 실학이 기득권을 극복하지 못한 이유도 정당화된 대안 권력이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기존 질서의 효용이 다했을 때 변화가 시작된다는 관점도 있었다. 정부 중심의 문제해결 방식이 일종의 '좌초자산'이 되고 있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상상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제안이 이 흐름과 맞닿아 있었다.
"민중의 삶 속에서 터져 나온 평등에 대한 갈망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세계관과 만나 힘을 얻고, 이것이 결국 사회를 운영하는 새로운 틀로 고착화될 때 비로소 낡은 질서가 무너진다."
"중요한 건 어떤 게 가장 가치 있고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느냐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
2주차의 산책에서는 우리가 새로운 문명, 기술을 받아드릴 때 어떤 태도를 가지는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조선 말 지식인들이 서양문명을 겪에 되면서 '수호-절충-전환'이라는 선택지에서 얼마나 분투했는지를 보며 가히 AI시대에 입장한 지금의 우리가 AI를 이분법적으로 받아드리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연구계에서 AI를 쓰느냐 아니냐가 아닌, 우리가 연구를 통해 어떤 것을 이뤄내고 싶은가. 거기서 AI라는 기술은 어떻게 위치시키고 사용해야하는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묻고 싶어요. 여러분은 왜 연구를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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