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탐사대
철학산책 목록으로
E05 박은식의 민족주의적 양명학
·철학산책철학산책 시즌6

E05 박은식의 민족주의적 양명학

나라의 몸은 망해도, 혼은 살아 있다 — 박은식의 양명학적 전환


해당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진행하는 철학스터디, 철학산책 시즌6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인사이트글입니다.

성리학자가 성리학을 버린 이유

박은식(1859~1925)은 원래 정통 성리학자였다. 조선의 지식인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했다. 그런데 그는 어느 시점에서 성리학을 놓고 양명학으로 돌아섰다. 당시 조선 유림 사회에서 이것은 거의 배신에 가까운 행위였다. 조선은 500년간 양명학을 이단시해 왔다.

박은식이 전향한 이유는 단순했다. 성리학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성리학은 이(理)를 궁구하는 데 탁월했지만, 그 앎이 실천으로 이어지는 데는 느렸다. 개인의 수양에는 강했으나 사회적 행동력에는 약했다. 나라가 무너지고 있는데 서재에서 성찰만 할 수는 없었다.

지행합일: 아는 것과 하는 것을 분리하지 않는다

양명학의 핵심 명제는 지행합일(知行合一) 이다. 앎과 행함은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 진짜 안다면 반드시 행하고, 행하지 않는다면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박은식에게 이 명제는 학문적 논쟁이 아니라 시대적 절박함이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성리학적 이론에는 정밀했지만, 서양 열강의 침탈 앞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박은식은 이 괴리를 양명학의 지행합일로 돌파하려 했다. 아는 것이 곧 행하는 것이라면, 나라의 위기를 인식하는 것 자체가 곧 행동의 시작이어야 한다.

그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유교가 '제왕에 중심을 두고 인민 사회에 보급할 정신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유교를 민중의 것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명학의 '양지(良知)' 개념 — 모든 사람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진 도덕적 앎 — 은 이 민중적 전환의 철학적 근거가 되었다.

국혼(國魂): 나라의 몸과 정신을 분리하다

박은식의 가장 독창적인 개념은 국혼(國魂) 이다. 나라에는 '형(形, 몸)'과 '혼(魂, 정신)'이 있다. 영토, 정부, 군대는 나라의 몸이고, 역사, 언어, 문화는 나라의 혼이다.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의 몸이 사라졌다. 그러나 박은식은 말했다. "나라의 형체는 망했으나 국혼이 살아 있다면 부활할 수 있다." 반대로, 국혼마저 사라지면 영영 돌이킬 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위로의 수사가 아니었다. 일제가 한국의 역사서를 압수하고 불태운 것을 보며 박은식은 경악했다. 그들이 파괴하려는 것은 종이가 아니라 국혼이었다. 박은식이 상해에서 『한국통사』와 『한국독립운동지혈사』를 집필한 것은 역사학자로서의 사명감만이 아니었다. 국혼을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라는 신념이었다.

철학으로 나라를 구하려 한 사람

박은식의 시도를 정리하면 이렇다. 그는 중국의 양명학이라는 도구를 빌렸지만, 그것으로 한국적 문제를 풀었다. 양명학의 지행합일은 지식인의 실천을 요구하는 논리가 되었고, 양지는 민중의 자각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국혼 개념은 나라 없는 민족이 정체성을 지키는 철학적 프레임이 되었다.

외래 사상을 수입하되 자기 문제의식으로 재구성한 것. 이것이 E01에서 살펴본 '한국철학의 방식' — 여러 가치를 공존시키며 자기 기준을 세우는 사유 — 의 구체적 사례다. 박은식은 양명학자이면서 동시에 한국 철학자였다.

함께 나눈 생각들

전통을 받아들이면서도 개혁하려 할 때 무엇을 남겨야할까? — 혼의 보존, 실천의 회복, 그리고 상상의 재건

대원들의 논의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공통 화두는 기록과 정체성의 보존이었다. 박은식이 대종교를 국교로 삼고 역사서 집필에 집중한 것처럼, 전통을 받아들인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기록이라는 시각이 있었다. 남기고 버림의 문제라기보다 대부분은 남기고 보관해야 하며, 후손들이 이를 보고 생각하고 재해석하는 것이 전통의 역할이라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한편, 전통을 단순히 보존해야 할 '유물'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국혼'으로 재정의해야 한다는 주장은 박은식의 혼백론을 현재로 끌어오는 시도였다.

둘째로 부각된 흐름은 인류 보편적 가치와 내면의 회복이다. 박은식이 주자학에서 '인(仁)'의 개념을 남겼듯이 인류 보편적 가치는 시대를 초월하여 남을 수밖에 없다는 관점이 있었고, 100년 전 선조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자신을 알기 위해 정신을 수양하고 정체성을 찾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와 공동체를 지키려는 마음이라는 성찰로 이어졌다. 개개인의 내면에 존재하는 진리를 발현할 수 있는 정신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것 자체가 전통의 핵심이며, 그 전통의 이유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사랑'이라는 답도 나왔다.

셋째는 앎에서 실천으로의 전환이었다. 이론적인 것을 삶에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고, 이는 박은식이 성리학의 이론 중심적 한계를 양명학의 지행합일로 돌파하려 한 것과 같은 맥락이었다. 연구의 영역에서도 거대한 사회문제 해결이 이상적이라는 '상상계'와 논문 생산이라는 '실재계'의 괴리를 넘어, 현장으로 나아가는 연구와 개개인의 양지를 각성시키는 생태계를 재건해야 한다는 구체적 프레임이 제시되었다. 이전의 철학과 역사에 대한 사유를 바탕으로 소셜비전을 상상하고, 기술을 활용하여 구현하며, 개개인이 각자의 현장에서 운동·사업·공동체·정책으로 확장해나가는 것이 박은식의 국혼론을 오늘에 적용하는 길이라는 논의로 수렴되었다.

"이전 세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한 존중. 하지만 인간사에서 절대적 해답은 없다. 바꿔야 한다면 모든 것을 다 바꿀 수 있다."

"양지를 각성한 개개인이 각자의 현장에서 만들어내는 지식과 상상이 운동, 사업, 공동체, 정책으로 확장될 수 있다면."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

박은식이 성리학을 버린 이유가 참 와닿았습니다. 앎이 정밀해질수록 오히려 행동에서 멀어지는 역설 — 이건 100년 전 조선 지식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우리 연구자들도 매일 마주하는 괴리예요. 시즌1부터 영미, 프랑스, 독일, 중국 철학을 거쳐 한국현대철학에 들어왔는데, 박은식에게서 드디어 "연구하는 사람이 왜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한국적 답을 만났습니다. 국혼을 기록으로 보존하는 것이 곧 독립운동이었다는 선언은, 연구 자체가 사회를 바꾸는 실천이 될 수 있다는 우리의 믿음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대원들과 함께 이 지행합일의 정신으로 우리 각자의 연구 현장을 가보려고 합니다.


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하는 모든 이를 위한 연구훈련 커뮤니티입니다. 실전형 연구훈련 부트캠프 <연구원정>과 연구자들의 사유훈련 <철학산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부트캠프 | 철학산책

문의하기: hello@naioth.net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