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08 박치우의 위기의 철학
모순의 시대, 총을 든 철학자의 질문
해당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진행하는 철학스터디, 철학산책 시즌6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죽을 것인가, 실천할 것인가
일제 말 경성. 한 청년 철학자가 칠판 앞에 서 있다. 그는 니콜라이 하르트만으로 학위를 받은 경성제대 1세대 서양철학자였다. 강단에 오르는 그의 이력은 말끔하다. 그런데 해방 후 그는 총을 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이번 회차에서 만난 철학자는 박치우이다. 강단에서 빨치산으로 간 철학자. 그 궤적은 단순한 전향이 아니다. 사회의 모순이 한 개인의 안으로 들어와 '위기'가 될 때, 철학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 그 질문에 대한 그의 답이었다.
신남철이 인간의 본질을 물었다면, 박치우는 물었다. 지금 이 땅에서, 모순을 보고도 움직이지 않는 철학이 철학일 수 있는가?
강단에서 빨치산으로 — 한 삶의 궤적
박치우는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삼일 운동을 직접 목격한 세대다. 열한 살의 소년이 수십만 명이 함께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때, 그 집단적 무의식은 평생의 밑돌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경성제국대학에서 니콜라이 하르트만을 공부했다. 독일 존재론의 최신 조류를 흡수한 조선인 철학자. 조선일보 장학금을 받으며 학위를 마친, 당대의 엘리트였다.
그러나 그의 철학은 강단에 머물지 않았다. 해방 후의 혼란, 친일 잔재의 존속, 미군정의 개입을 마주하며 그는 펜을 놓고 총을 든다. 박치우를 훗날 이렇게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총을 든 철학자."
모순이란 무엇인가
박치우를 읽으려면 먼저 '모순'을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그가 말하는 모순은 두 가지가 모두 맞을 때 생긴다. 노동의 주장도 맞고 자본의 주장도 맞다. 결정할 수 없는 상태, 그것이 모순이다.
문제는 모순이 하나로 오지 않는다는 데 있다. 해방 직후의 조선을 보자. 독재의 모순, 제국주의의 모순, 친일 잔재의 모순, 자본주의의 모순이 동시에 얽혀 있었다. 객관적 모순이다.
이 객관이 주관으로 건너오는 순간이 있다. 신문을 넘기며, 거리를 걸으며, 문득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감각이 가슴을 친다. 그 감각이 위기다. 박치우에게 철학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모순을 파악하는 세 가지 방식
박치우는 모순을 붙드는 방법을 셋으로 나눴다. 교섭적 파악, 모순적 파악, 실천적 파악.
교섭적 파악은 주관과 객관을 계속 왕복하는 일이다. 나와 타자, 시스템과 운동 사이를 오가며 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본다. 이걸 놓치면 독재에 빠지거나 자가당착에 갇힌다.
모순적 파악은 모순들 사이의 연결고리를 읽는 일이다. 개인의 모순, 조직의 모순, 지역의 모순이 어떻게 서로를 떠받치는지. 어떤 모순이 더 큰 자리에 있는지.
실천적 파악은 단순하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 셋이 만나는 자리에 박치우가 말하는 프락시스(Praxis)가 있다.
프락시스 — 안다는 것의 진짜 얼굴
박치우는 말한다.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이 연결되어 있을 때, 그때가 실천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해야 한다"는 당위만 맴돌다 사라지는 이데올로기에 머문다.
공산주의가 이데올로기가 되는 이유도 여기 있다. 공산주의에서 공동으로 나눈다라는 이념이 실천적 행동으로 발현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그건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문화 키부츠에서 600명이 집과 직업을 돌려가며 사는 모습은, 공산주의가 생활이 되는 순간을 보여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적었다.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해석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지금부터 우리는 세계를 변화시키겠다." 박치우는 이 문장을 식민지 조선의 언어로 받아 쓴 사람이었다.
한반도의 비동시성, 같은 시대 다른 시계
박치우의 실천 철학은 해방 이후 한반도에서 두 갈래로 분기한다. 1958년의 천리마 운동과 1960년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같은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시계를 찬 두 사회를 본다.
북한은 노동을 중심축에 두었다. 노동신문이 상징하듯 근로자가 사회 재편의 주체가 된다. 남한은 자본을 중심축에 두었다. 재벌과 수출이 경제의 엔진이 되었다.
정치학은 이를 비동시성의 동시성이라 부른다. 같은 시간을 살아가지만 다른 시대가 겹쳐 있는 상태. 박치우가 꿈꾼 '인민 민주주의·근로 민주주의'는 결국 남한에서도 북한에서도 온전히 뿌리내리지 못했다. 남에서는 자본이, 북에서는 선군 정치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금도 우리는 노동과 자본의 큰 싸움을 살고 있다. 박치우의 질문은 낡지 않았다.
당파성을 숨기지 말라
자유주의는 곧잘 자신이 중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박치우는 보았다. 모든 실천은 이미 어떤 편을 선택한다. 모순을 푸는 방법이 여러 갈래로 갈릴 때, 어느 갈래를 택할 것인가 — 그 선택이 당파성이다.
문제는 자유주의가 당파성을 숨겨둔다는 것이다. 헌법이라는 형식 아래 덮어두고는 마치 없는 것처럼 군다. 박치우는 당파성을 드러내 놓고, 사회 안에서 민주적으로 논의하고 결정하자는 것으로 정반대로 주장했다.
이 태도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서늘하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중립'이라는 가면 뒤에 자기 선택을 숨기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대목이다.박치우라면 되물을 것이다.
당신은 어느 편에서, 무엇을 하려 하는가.
나가며 — 위기는 가능성의 다른 이름
박치우는 썼다. "철학은 오늘 이 땅에 우리에게 있어서 마땅히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우리는 현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이것이 가장 긴급한 일이다."
위기는 위기 자체로 머물지 않는다. 위기는 가능성 위에 놓여 있다. 실천과 행동을 통해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 박치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답이 아니라 이 자세였다.
다음 회차에서는 박종홍을 만난다. 신남철의 인간주의와 박치우의 근로자주의를 지나, 국가주의로 건너가는 길목이다. 박정희 체제가 어떤 논리로 시스템이 되었는지, 그 자리에서 함께 보게 될 것이다.
함께 나눈 생각들
지식인이 현장에 뛰어들면 지식생산에 어떤 영향을 줄까? — 책상 위의 이론, 현장의 몸
대원들 사이에서는 "당연히 현장 뛰어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짙게 깔려 있었다. 현장에서 분리된 연구가 과연 의미가 있느냐는 물음. 모든 연구는 현장에서 시작되고 현장에서 진행된다는 감각이 바닥에 놓여 있었다.
"현장에서 분리된 연구가 과연 의미 있을까. 모든 연구는 현장에서 시작되고 현장에서 진행된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현실을 자각한 뒤 오히려 가능성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 거대한 장벽 앞에서 더 급진적으로, 혹은 냉소적으로 변해갈 수도 있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현장은 이론을 다듬는 곳이자 이론가를 꺾는 곳이기도 하다.
최근 방영한 앤디 위어의 『프로젝트 헤일메리』을 통해 이론만 가지고 있던 학자가 강제로 현장에 투입된 뒤 문제를 해결해낸 이야기를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다면 지식인은 강제로라도 현장에 투입되어야 하는가.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 목사에게도 사회 경험이 필요한가. 성경 연구의 시간을 지키는 것과 성도의 삶을 이해하는 것 사이의 긴장이 잠시 놓여 있었다.
"지식인 각자의 세부 관점에 입각하여 숙고했던 대안들이 현장에서 인식되고 표현되며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고, 추후 현장에서 오롯이 애통할 수 있는 지식인들이 등장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박치우의 사상을 내 문제에 적용한다면 — 연구와 실천의 간극
박치우가 말한 '근로대중'을 현대의 노동자에 대응시켜 보자는 제안이 있었다. 실천의 장에서는 그의 예언이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감각 하지만, 연구와 현장의 거리는 지금도 너무 크다는 의견이 뒤따랐다.
"현대 실천의 장에서는 그의 예언이 맞을지도. 하지만 여전히 연구와 현장 실천의 괴리는 너무나 크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박치우의 세 가지 파악 — 교섭적·모순적·실천적 — 을 자기 삶의 자리로 끌어오는 시도가 보였다. 우리의 위기는 무엇이고, 내게 교섭적 파악이란 어떤 모양이며, 실천적 파악은 어디로 향하는가. 답을 쓰기 전에 질문의 자리를 먼저 만드는 작업이었다.
함께 더 나누고 싶은 질문
예언자의 모습으로 살다 간 박치우 — 그의 결말은 그가 예상한 것이었을까. 이 물음이 모임 끝자락에 남았다. 예수와 소크라테스의 계보를 떠올린 대원도 있었다.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공감하여 오롯이 애통했던 지식인들. 자기희생을 통해 실천했기에 오늘까지 선양되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었다.
한편에서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질문이 다시 던져졌다. 인간 사회가 거대한 위기를 마주했을 때, 한 명의 초인이나 소수의 엘리트가 아닌 방식으로 문제를 풀어갈 수는 없는가. 박치우가 바라본 '인민 민주주의'의 씨앗이 이 물음에 스며 있었다.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는 것이 아니다. 실행하지 않으면 참 믿음이 아니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이번 모임을 통해 와닿는 부분은 명확했어요.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이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건 이데올로기다." 석사 과정에서, 연구원 생활을 할 때 단 한 번도 현장을 나가 본 적이 없었어요. 현장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컨퍼런스를 기획하고 자문회의를 진행했지만, 날 것의 현장에 놓여 본 적은 없죠. 그게 알기만 하는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한 모습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박치우를 따라가다 보니, 현장을 만나지 않은 지식이 이데올로기라는 사실을 여실히 느끼게 됩니다.
연구탐사대가 연구와 실천을 함께 걸어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연구자는 책상과 현장을 왕복하며 모순을 교섭하고, 그 자리에서 실천의 방향을 찾아갑니다. 박치우의 "총을 든 철학자"까지 가지 않더라도, 우리 각자가 자기 자리의 모순 앞에 서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는 순간, 철학은 이미 시작된 것이라고요. 다음 주에 만날 박종홍과 그 뒤의 씨알 사상까지, 이 질문을 놓지 않고 이거가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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