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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9 박종홍과 국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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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9 박종홍과 국가주의

부정의 변증법은 어떻게 국민교육헌장이 되었나


해당 글은 연구탐사대에서 진행하는 철학스터디, 철학산책 시즌6에서 다룬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한 글입니다.

우리는 언제 애국심을 느낄까

해외에 나갔을 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 마음이 일렁입니다. 월드컵 길거리 응원에서 옆사람과 어깨를 맞대고 함성을 지를 때, 내가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감각이 또렷해집니다. 그런데 이 익숙한 감정의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어떤 한 문장과 마주치게 됩니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1968년 박정희 대통령이 선포한 국민교육헌장의 첫 문장입니다. 초등학교 45학년 아이들이 매일 외워야 했던 이 문장은, 한 철학자의 사유에서 시작됐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이 박종홍(朴鍾鴻, 19031976)입니다.

박종홍이라는 두 얼굴

박종홍은 1903년에 태어났습니다. 3.1 운동을 직접 목격한 세대였죠. 자발적으로 일어난 인민의 모습, 거국적인 정신을 어떻게 다음 세대로 이어갈 것인가. 이 질문이 그의 평생을 움직였습니다. 문제는 그의 이력이 한 갈래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1944년 일제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고, 해방 이후 서울대 철학과 교수가 됐으며, 1968년 국민교육헌장의 기초자가 됐고, 유신헌법을 옹호하기까지 했습니다. 박정희가 가장 좋아한 철학자였습니다. 7권에 달하는 전집이 있고, 서울대 철학과에서는 거의 신처럼 모시는 인물입니다. 같은 사람을 두고 한쪽에서는 한국 현대철학의 정초자라 부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권위주의 체제의 이념가라 부릅니다. 철학사에서 이렇게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인물도 드뭅니다. 이번 시간에는 그가 어떤 논리로 한국 사회를 하나로 묶으려 했는지, 그리고 그 논리가 어떻게 우리 일상에 스며들었는지를 따라가 봅니다.

부정의 변증법 — "이대로는 안 된다"에서 출발하기

박종홍의 박사논문 제목은 「부정과 창조의 변증법」입니다. 1959년에 쓰였습니다. 6.25가 끝난 지 10년밖에 되지 않은 시점, 나라는 폐허였고 사람들은 가난했습니다.

그가 던진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답은 헤겔에게서 빌려옵니다. 정-반-합. 현실(정)이 너무 낙후되어 있을 때,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단 부정(반)합니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 이 부정의 에너지가 위로 치고 올라가는 힘이 됩니다. 그 힘이 새로운 역사(합)를 만들어 냅니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실존주의가 결합됩니다. 인간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기 본질을 향해 추동해 가는 존재라는 것. 존재(Being)는 멈춰 있지 않고 비커밍(becoming)으로 흐릅니다. 그 추동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박종홍이 말하는 "근본 기분"이고, 그는 이를 "감성적 실천"이라 불렀습니다. 쉽게 말하면 이렇습니다. 친구와 이야기하다 "맞아 맞아 그렇지" 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근데 이렇게도 볼 수 있지 않아?" 하고 한 번 뒤집어 보는 것. 이 작은 부정이 모이면 사람을 움직이고, 결국 국가도 움직인다는 것이죠.

경(敬)이 위계의 정점에 오르다

부정의 변증법만으로는 국가를 묶기 어렵습니다. 사람들을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려면, 모두가 우러러보는 무언가가 필요합니다. 중세 유럽에서 그것은 신이었습니다. 일본에서는 천황이었고, 영국에서는 왕실이었습니다. 위계질서의 가장 높은 자리에 무언가를 놓아야 사회가 버팁니다. 박종홍은 묻습니다. "우리에게는 무엇이 그 자리에 들어가야 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그의 선택입니다. 단군신화도 아니고, 동학도 아니었습니다. 한국 근대철학자들이 으레 끌어왔던 자원들을 그는 옆으로 비켜놓고, 퇴계 이황의 경(敬) 사상을 가져왔습니다. 경(敬)은 두 방향을 동시에 봅니다. 안으로는 자신을 살피는 수양(향내적 태도), 밖으로는 현실의 모순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실천(향외적 태도). 박종홍은 여기에 실존주의의 진지함과 실용주의의 추진력을 덧대어, "하늘을 우러러 자신을 갈고닦으면서 동시에 국가에 헌신하는 인간상"을 빚어냅니다.

조선왕조가 500년이나 지속된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사람들은 흔히 양천제나 성리학을 떠올리지만, 실제로는 경국대전에 있었습니다. 왕이 아니라 사대부 중심으로 짜인 법전, 변덕스러운 왕은 상징으로 두고 운영의 지속성을 사대부가 떠받치는 구조. 박종홍은 이 모델을 1960년대로 가져와,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고 그 아래에 경(敬)으로 단련된 국민이 헌신하는 위계를 그려냅니다.

1968년, 철학이 국가의 교과서가 되다

이렇게 다듬어진 사유가 한 장의 문서로 응결됩니다. 국민교육헌장.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자주 독립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인류 공영에 이바지할 때다…"

문장 하나하나가 박종홍의 사유와 정확히 겹칩니다.

  •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 → 우리는 이미 역사 안에 던져진 존재라는 하이데거식 출발
  • "안으로… 밖으로…" → 향내적 태도와 향외적 태도의 통합
  • "공익과 질서를 앞세우며" → 경(敬)으로 단련된 인간상
  • "반공 민주 정신… 자유세계의 이상" → 부정해야 할 대상이 명확해진 변증법

그리고 이것은 종이 위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농촌을 바꿨고, 1962년 박정희가 법제사법위원회를 장악하면서 국가의 모든 의제가 한 점을 통과해야만 통과되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한국전쟁 직후 200명의 다양한 직업군(농부, 선비, 상인까지)으로 출발한 비례대표제 제헌 의회가, 단지 오탈자만 검수하던 작은 위원회를 1962년에 거대한 관문으로 바꾼 셈입니다.

이 구조가 만들어 낸 것이 이른바 "고로한 자본주의", 곧 노동이 주가 된 북한과 달리 자본을 중심으로 국가가 사회를 운영하는 한국형 모델입니다.

같은 시기 독일에서는 정반대 작업이 있었다

여기서 한 번 시야를 넓혀봅니다. 1960년대, 거의 같은 시기에 독일의 아도르노는 「부정변증법」을 쓰고 있었습니다. 박종홍과 글자는 비슷한데 방향이 정반대입니다.

  • 아도르노: 국가주의가 너무 비대해졌으니, 변증법을 하나의 체계로 종합하려는 그 긍정성의 본질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야 한다.
  • 박종홍: 6.25로 무너진 동질감을 회복해야 하니, 변증법을 통해 부정을 긍정으로 바꿔 위로 올라가야 한다.

같은 헤겔의 자장 안에 있는 두 철학자가, 한쪽은 개인을 향해, 한쪽은 국가를 향해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 것입니다. 어느 쪽이 옳은 답이라기보다, 각자의 시대가 호명하는 응답이 달랐다고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문제는 응답 이후입니다. 박종홍의 국가주의는 권위주의적 질서로 굳어졌고, "조국 근대화"라는 거대 담론 아래 "이건 문제야" 라고 말할 수 있는 비판적 사유가 자취를 감췄습니다. 가부장적 체제로 정립되었고,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필연성으로 동원되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운동권은 미국으로 건너가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배워 옵니다. 박종홍이 60년대에 세팅한 국가론을, 80년대 시민들이 한 줄씩 풀어내며 무너뜨립니다.

철학자는 국가의 이익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번 회차의 핵심 질문은 여기에 있습니다.

플라톤은 철인정치를 주장했습니다. 철학자가 왕이 되어 직접 다스려야 한다고요. 어떻게 보면 박종홍이 추구한 길이 그 한국적 변주였습니다. 그리고 그 정신은 지금도 박정희 시대를 향수하는 사람들 사이에 잔재로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보았습니다. 철학자가 국가의 이념가가 되는 순간, 개인의 자율성은 위반되고, "비판"이라는 사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이 마비된다는 것을요.

그렇다면 반대로, 철학자는 국가와 거리를 둬야 할까요. 아도르노처럼 비판적 거리에 머물러야 할까요. 그러나 1945년 직후의 한국, 폐허 위에 국가를 다시 세워야 했던 그 시대에 그것이 정말 가능했을까요.

스피노자는 "모든 규정은 부정"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를 긍정하는 순간 다른 모든 것이 부정됩니다. 우리가 한국인을 어떻게 규정하느냐에 따라 결론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헬조선/경쟁/한의 정서로 보면 비관이 나오고, 빛의 혁명/자발성/중꺾마로 보면 가능성이 나옵니다. 같은 사회를 보면서요.

그래서 어떤 철학을 어디에 거느냐가 결정적입니다. 좋은 것을 보게 하는 방식으로 철학을 세팅할 것이냐, 안 좋은 것을 더 드러내는 방식으로 세팅할 것이냐. 박종홍의 선택을 옹호하든 비판하든, 결국 철학을 한다는 것은 어디에 시선을 둘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점은 분명해집니다.

나가며

박종홍을 읽고 나면 묘한 기분이 듭니다. 그가 빚어낸 위계의 정점은 이미 무너졌지만, 그가 남긴 사유의 습관은 여전히 우리 안에 흐릅니다. "민족 중흥"이라는 말에 뜨거워지는 마음, 안과 밖을 동시에 다잡으려는 자세, 우러러볼 무언가를 찾는 갈증. 우리가 이 감각의 출처를 알아야, 그것을 어디까지 받아들이고 어디서부터 새로 짤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다음 회차에서는 함석헌을 만납니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정반대 자리에서 국가를 사유했던 사람. 박종홍이 위로 모았다면, 함석헌은 아래로 흩었습니다. 두 시선을 나란히 놓고서야, 우리에게 필요한 한국 현대철학의 좌표가 보일 것 같습니다.

함께 나눈 생각들

해당 내용은 철학산책에 참여하는 대원들이 나눈 질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박종홍이 답하려 한 문제는 무엇이었을까 — 위기와 동질감

이번에도 특히, 박종홍의 출발점을 시대의 위기로 읽는 시선이 많았습니다. 전쟁 이후 국가가 힘이 없고 국민이 가난했던 그 폐허 위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 공동체를 하나로 모을 수 있을까"가 그의 평생의 물음이었다는 것이지요. 한편에서는 그 질문 자체를 더 개인적인 차원으로 끌어내려 보기도 했습니다. 매 순간 불안과 경이를 경험하는 한 사람이 어떻게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실천할 수 있는가, 라는 식으로요.

"민족이 앞두고 있는 위기의 현실 앞에서,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철학의 역할은 무엇일까."

박종홍의 답은 분명했습니다. 현 시점, 현 장소, 현 공동체가 민족이라는 자각을 하도록 애국애족적·근대화적 교육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방법으로 자기검열·공동체 우선·권위 존중 같은 동아시아적 특징을 강하게 내재화하는 사상을 골랐다는 점이 인상적이라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평등한 민중 중심의 동학이 아니라 조선시대 퇴계의 경(敬) 사상을 가져온 그 선택의 무게를 짚는 시선이지요.

박종홍의 사상을 우리의 문제에 적용한다면 — 부정의 동력, 어디까지 정당한가

전환기에 사회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세스를 설계할 때, 위기감 자체를 회피하지 않고 도리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으로 삼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있었고, "내가 중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에 주안점을 두고 추진해 가기"라는 단순하지만 강한 정리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같은 도식을 청년 세대에 적용하려고 할 때, 한쪽에서는 강한 망설임이 보였습니다.

"청년들이 위기다 위기다 하는 이 상황에서, 청년들의 현재 상태를 부정하고 우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정의하고 세뇌시켜야 하나."

부정의 변증법은 위기를 동력으로 바꾸는 강력한 도구지만, 그 동력을 누가 어디로 끌고 가느냐에 따라 해방이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세뇌가 되기도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박종홍이 북한을 어떻게 바라봤을지, 국민교육헌장의 논리가 거꾸로 북에도 적용 가능한 것은 아니었을지 묻는 의견도 있었는데, 부정의 변증법이 왜 보편이 아니라 특정한 정치적 기획이었는지를 되짚는 질문이었습니다.

철학자는 국가의 이익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이번 회차의 메인 토론 질문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편에서는 철학자가 국가의 이익보다 더 큰 지평을 봐야 한다는 의견이 강했죠. 인류애, 상호 존중 같은 보편 가치가 국가의 단기 이익보다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이있었습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은 이해가 가지만, 마치 영화 「국제시장」을 보는 느낌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중도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답하려다 멈춰선 시선도 있었습니다. "과연 국가 이익에 중도란 것이 있을까, 중도의 기준은 어떻게 설정할 수 있을까"라는 자기 반문이 있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시선은 박종홍이라는 한 인물 안에서 일어난 일을 들여다봤습니다. 그에게 국가는 자신의 철학을 실천할 수 있는 기제(mechanism)였을지, 그 욕망과 박정희의 욕망이 맞닿으면서 국민교육헌장과 유신이 등장한 것은 아닐지. 철학은 실천만큼이나 "철학 본연의 역할" 자체를 묻는 작업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함께 더 나누고 싶은 질문

대원들 사이에서는 토론을 마치고 남은 질문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먼저 시간과 장소가 호명하지 않는다고 해서 나의 존재가 사라지거나 부정되지는 않는다는 자각이 있었습니다. 박종홍은 한 사람을 민족이라는 시간 속에 던져진 존재로 보았지만, 그 호명을 거부하는 자리에서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는 감각이지요.

또 한편에서는 6.25 당시 어느 체제로든 통합이 되었다면 지금 우리 삶은 어땠을지를 묻기도 했습니다. 박종홍이 풀고자 했던 분단 그 자체를 사고실험으로 다시 비춰보는 질문입니다.

가장 날카로웠던 한 마디는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야 된다"는 논리가 곧 모든 부정한 행동의 근거가 되어 왔다는 지적이었습니다. 그 수단이 진정 위기 극복을 위한 것인지, 개인의 이익을 위한 것인지를 구분하는 일이 참 어렵다는 자조가 따라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이런 질문이 남았습니다.

"철학자들이 실천과 병행하려 노력해왔고 동시에 그릇된 실천의 사례들을 보기도 한다. 그렇다면 철학은 한편으로 실천과 구분되는 독립성을 가짐으로써 그 역할을 다할 필요도 있는 걸까."

박종홍을 넘어, 다음 회차의 함석헌으로 넘어가는 좋은 다리가 될 질문들이었습니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박종홍 회차는 시즌 6에서 가장 무거웠던 시간이기도 한 것 같아요. 시즌 1부터 영미·프랑스·독일·중국 철학을 거치며 우리는 "철학이 사회를 어떻게 바꾸는가"를 봐왔는데, 그 질문에 가장 강력하게 답한 한국 철학자가 바로 박종홍이었습니다. 부정의 에너지를 동력으로 바꿔 위로 올라간다는 그의 변증법은 정말 매력적이지만, 같은 도식이 결국 "위기니까 모든 수단을 써도 된다"는 논리로 미끄러져 비판적 사유를 잠재웠다는 사실이 저희에게는 묵직한 경고처럼 다가왔어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하는 우리에게도 너무 손에 익은 논리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회차 함석헌에서 같은 시대의 정반대 자리에 선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의 연구가 어디에 시선을 두어야 할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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