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왜 나인가 — 철학산책 시즌7 오픈세미나
여섯 가지 질문으로 시작하는 현대철학 입문
들어가기. 나와 다른 사람을 구별하기
지난 7월 2일 목요일 저녁,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철학산책 시즌7 오픈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오픈세미나에서는 6가지 질문을 통해 전체 시즌을 톺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첫번째 질문은, "나와 옆에 있는 사람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였습니다. 경험, 육체, 기억, 가치관, 서사, 출생 등 다양한 기준들이 등장했죠.
흥미로운 지점은 그다음 질문이었습니다. "이 중에서 나만 알고 다른 사람은 모르는 것이 있나요?" 육체와 출생은 타인도 관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 기억, 가치관, 서사는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알 수 없습니다.
프로이트 이후로 이 차이를 우리는 '정체성'이라 부릅니다. 프랑스 철학자 폴 리쾨르는 『시간과 이야기』에서 이렇게 정리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다른 이유는,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있고 그 이야기를 내가 쓰기 때문이라고요.
왜 하필 이 질문으로 세미나를 열었을까요. 답을 좁혀가는 과정 자체가 현대철학의 입구이기 때문입니다. 타인도 관찰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걷어내고 나면, 결국 '내면'만 남습니다. 이 내면이야말로 현대철학이 출발하는 자리입니다.
철학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자기 경험으로 답할 수 있지만,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현대성의 한복판에 서게 되는 질문인 셈입니다.
이날 이어진 주제들도 결국 이 질문의 변주였습니다. 사르트르의 세 존재, 주체성 논쟁, 라캉의 세 세계까지. "나는 무엇으로 나인가"라는 물음을 등뼈 삼아, 시즌7이 걸어갈 지도가 하나씩 펼쳐졌습니다.
현대성의 두 기둥, 내면성과 일상성

캐나다 철학자 찰스 테일러는 『자아의 원천들』에서 현대인을 규정하는 두 가지 요소를 제안합니다. 첫 번째는 내면성(inwardness)입니다. 내면 세계가 깊고 넓을수록 주체성이 강해진다는 관점입니다. 경험이 쌓이고 기억이 체계화되고 가치관이 선명해질수록 '나'라는 존재가 뚜렷해집니다. 두 번째는 일상의 긍정(affirmation of ordinary life)입니다. 현대는 일상(ordinary) 그 자체가 중요해진 시대라는 뜻입니다. 우발적인 것들이 물러나고, 필연적인 것들이 삶을 채우는 시대가 왔다는 거죠.
예를 들어, "오늘 밤 11시까지 여기 있을 수 있나요?" 대부분 손을 들지 않습니다. 내일의 일상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물론 술자리라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자리가 재밌고, 알코올이 들어가면, 아예 밤을 새고 여기서 잠들겠죠. 그 순간 일상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은 적당히 여기까지'를 스스로 정합니다. 누군가 밖에서 "11시까지 하세요"라고 명령하면 "네가 뭔데?"가 되는 시대. 내일의 일상을 지키는 판단이 내면에서 나온다는 것, 이것이 현대성의 증거입니다.
중세에는 외부 권위가 삶의 틀을 정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스스로 결정합니다. 내면의 책이 미래의 일상을 투사하고, 그 투사에 맞춰 오늘을 조절합니다. 현대 철학은 외부의 변화보다 내부의 변화에 집중합니다. 이러한 시선이 이번 시즌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입니다.
진리의 세 갈래 — 독일, 프랑스, 영미
철학자들이 진리를 어디에서 찾느냐에 따라 사유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독일 철학자들은 관념 안에 진리가 있다고 봅니다. 칸트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하며 혼자 생각하다가 『순수이성비판』을 썼습니다. 프랑스 철학자들은 관계 속에서 진리가 발생한다고 봅니다. 사르트르는 타자가 있어야만 내가 존재한다고 했고, 푸코는 여러 사람이 모였을 때 무엇이 통치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영미 철학자들은 진리가 바깥에 있다고 봅니다. 외부 세계를 관찰하고, 실험하고, 단계를 매뉴얼화해서 인풋하는 과정 자체가 진리에 다가가는 길입니다.
동양은 또 다릅니다. 유교에서 진리는 하늘(天)과 조상에게서 옵니다. 한국 철학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내천(人乃天)으로, 인간과 하늘을 연결합니다.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결정적 차이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 지도를 머릿속에 그려두면 앞으로 어떤 철학자의 책을 읽든 길을 잃지 않게 됩니다.
사르트르의 세 존재 방식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 방식을 세 층위로 나눕니다.
첫 번째는 즉자존재(être-en-soi)입니다. 자신과 타자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 의식이 통합된 존재입니다. 제국주의가 식민지 사람들을 '개 돼지'처럼 취급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을 즉자존재로 봤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대자존재(être-pour-soi)입니다. 나 스스로를 떠나서 내가 누구인지를 정의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세 번째는 대타존재(être-pour-autrui)입니다. 타자의 시선 속에서 나를 인식하는 존재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를 생각하며 헤어스타일을 고르고 옷을 입습니다.
사르트르가 이 구분을 고민한 이유는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길래 다른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는 생각까지 가는 걸까. 타자를 즉자존재로 보는 순간 폭력이 가능해집니다. 반대로 대타존재로 인식하는 순간 대화가 시작됩니다.
주체성은 타고나는가, 형성되는가

피자 한 판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크기를 나눠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 개념이 여기서 나옵니다. 먼저 자르는 사람이 맨 마지막에 먹으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 어떻게 자를지를 생각하게 되고, 최대한 공정하게 자르게 됩니다. 절차가 주체를 형성하는 방식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은 주체성이 타고난다고 봅니다. 충분히 자유를 제공하면 인간은 누구나 그 자유를 풍부하게 누릴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공동체주의자들은 반대로 인간이 백지로 태어난다고 봅니다. 어떤 공동체를 만나느냐에 따라 주체성이 달라집니다. 가족, 지역, 국가, 이야기 공동체 속에서 정체성이 형성됩니다.
마이클 샌델은 이 둘 사이에서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라는 자리를 제안합니다. 공동체를 만들되, 합의와 토론을 통해 자유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가 경제적 자유를 가장 우선시한다면, 정치적 자유주의는 민주주의 제도가 우선해야 한다고 봅니다. 이 논쟁이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에서 진행 중입니다.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 라캉의 세 세계
라캉은 인간의 경험 세계를 세 차원으로 나눕니다.

핸드폰이 눈앞에 있습니다. '핸드폰'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상징계에 들어갑니다. 언어로 세상을 분류하는 영역입니다. 그런데 핸드폰이라는 말과 눈앞의 물건이 연결되려면, 머릿속에 핸드폰의 이미지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상상계입니다. 그리고 이 둘 다 없이도 존재하는 물건 자체가 실재계입니다. 모든 존재는 이 세 가지 측면을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은 실재가 없는데 상징과 상상만 있을 때입니다.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하는 것처럼 만드는 힘, 이것이 이데올로기입니다. 신념이 되어 사람들을 움직이고, 없는 허구를 실천하게 만듭니다. 담론 분석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는데 어떻게 이게 문화가 되는가'를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철학의 세 기둥, 존재론·인식론·가치론
철학을 공부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세 축이 있습니다.

존재론(ontology)은 세상의 근본 바탕에 뭐가 있느냐를 묻습니다. 물질이냐, 정신이냐. 탈레스는 만물의 근본이 물이라 했고, 플라톤은 이데아라 했습니다.
인식론(epistemology)은 그 존재들을 어떻게 인식하느냐를 묻습니다. 점들이 연결되어 공간을 만드는 것처럼, 책상과 노트북과 공기가 연결되면 강의실이 됩니다. 여기에 신을 더하면 교회가 되고, BTS가 들어오면 작업실이 됩니다.
가치론(axiology)은 그 인식된 존재들 중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묻습니다. 민주주의에서 가장 큰 가치가 정의인지, 평등인지, 자유인지에 따라 제도의 모양이 달라집니다.
이 세 축을 머릿속에 두고 철학자를 읽으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푸코는 어떤 존재를 놓고 인식론을 펼쳤을까. 사회, 인간, 이성과 비이성. 그중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봤을까. 비이성적인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고, 그래서 『광기의 역사』를 썼습니다.
시즌7로의 초대
이번 오픈세미나에서는 2시간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함께 '현대철학'을 들어가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화이트헤드의 사건철학, 롤스와 샌델의 정치철학,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동학의 인내천까지. 시즌7에서 다룰 지도의 윤곽이 하나씩 드러났죠.
철학산책은 답을 내리는 자리가 아닙니다. 더 깊은 맥락으로 들어가면서 더 많은 사유와 해석과 실천의 단서를 찾는 자리입니다. 우리가 느끼는 '철학'이라는 과목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암기하는 과목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철학자 안으로 들어가서 '왜 이런 질문을 던졌지'를 고민하면, 그때부터 우리 생각이 시작됩니다.
철학산책 시즌7은 7월 11일에 시작합니다. 비트겐슈타인부터 출발해 화이트헤드, 토머스 쿤, 존 롤스를 지나 낸시 프레이저까지, 11주의 현대철학 여정을 걸어갑니다. 시즌7 모집은 7월 5일에 마감되었습니다.
사회문제를 연구하는 우리에게, 이 사유의 여정이 문제를 보는 렌즈를 더 선명하게 만들어줄 것입니다. 오픈세미나 전체 영상은 유튜브 다시보기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다음 시즌 소식은 철학산책 페이지와 인스타그램에서 가장 먼저 전해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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