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탐사대
철학산책 목록으로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
·철학산책철학산책 시즌7

언어의 한계가 세계의 한계다

비트겐슈타인이 던진 질문, 우리는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는가


내가 아플 때, 당신은 그 아픔을 알 수 있을까요

철학산책 시즌7의 첫 번째 모임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지금 제 등이 아프다고 해봅시다. 얼굴을 찡그리고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제 아픔을 알 수 있을까요?

한 대원은 "완전히 아는 건 나뿐"이라고 답했습니다. 또 다른 대원은 "다른 사람도 공감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두 대답이 각각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과 후기 철학을 대변합니다.

나만이 내 아픔을 안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네가 뭘 안다고 그래"라고 타인을 밀어낼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도 내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면, "나 너무 아파, 도와줘"라고 손을 내밀 수 있습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가 실천과 삶의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번 주 우리가 붙든 중심질문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사물과 말이 매칭되지 않으면 언어라고 할 수 있을까? 비대칭인 구조는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유지될까요.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와 후기는 이 질문에 대한 두 개의 대답입니다.

언어로 세상을 자르는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오스트리아 빈의 거대한 부호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철강산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았고, 집안에는 예술가와 지식인들이 드나들었습니다. 그러나 형제 세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을 겪었고, 본인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포로로 1년을 보냈습니다.

전쟁터에서 그는 고민했습니다. 어떻게 인간은 서로의 아픔을 모른 채 총을 겨눌 수 있을까. "평화를 원합니다"라는 말과 "폭탄을 투하하라"는 말은 모두 같은 언어인데, 어떤 말은 수백만 명을 죽이고 어떤 말은 사람들을 멈추게 합니다. 도대체 언어란 무엇이기에 이런 영향력을 가지는 것일까요.

영미철학의 특징을 먼저 이해하면 비트겐슈타인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독일 철학이 진리가 내 안에 있다고 본다면, 프랑스 철학은 진리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반면 영미철학은 진리가 외부에 있고, 그것을 내가 어떻게 흡수하고 이해하는지를 탐구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바로 그 흡수의 도구가 언어라고 보았습니다.

그림이론: 말이 곧 나를 대신한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핵심 개념은 그림이론입니다. 병원에서 처방전을 받는 상황을 떠올려봅시다. 의사가 묻습니다. "어디가 아프세요?" 여러 증상을 체크하고, 알지 못하는 약 이름들이 적힌 처방전이 나옵니다. 그 처방전은 나의 현재 상태를 대변합니다.

놀라운 점은 내가 없어도 그 처방전만으로 나의 존재가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일기를 쓰면 내가 없어도 사람들이 그 일기를 보고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했구나"라고 알 수 있습니다. 연설문만 있어도 그 사람의 존재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비트겐슈타인이 말한 "대칭"입니다. 나와 나를 대변하는 언어(글, 처방전, 일기)가 일대일로 매칭된다는 것입니다. 핸드폰이라는 말을 하면 머릿속에 핸드폰이 떠오르고, 실제 핸드폰과 연결됩니다. 생각, 언어, 실제가 일직선으로 연결되는 순간 의미가 발생합니다.

침묵과 모순: 말할 수 없는 것 앞에서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나는 너를 좋아하지만 또 싫어하기도 해." 이 문장은 어떻게 될까요. 논리적으로 보면 플러스 1과 마이너스 1을 더한 것과 같습니다. 합치면 0, 즉 무의미가 됩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윤리, 미학, 삶의 의미 같은 것들은 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연과학처럼 "헬륨 He"라고 말하면 실제 헬륨과 매칭되는 것만이 유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양가감정을 가진 사람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우리는 이 이야기를 나눌때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사람이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인데, 심지어 애증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전기 비트겐슈타인에 의하면 그건 '무의미'하다는 거니까요.

언어게임과 가족유사성: 후기 철학으로의 전환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의 전기 철학이 한계에 부딪혔음을 깨달았습니다. "A는 빨갛다"와 "A는 파랗다"가 동시에 참일 수 없다는 진리표가 현실과 맞지 않았습니다. 같은 점에 두 가지 색이 공존할 수 없다고 봤는데,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그것이 가능했습니다.

후기로 넘어오면서 그는 새로운 개념들을 제시합니다. 언어게임은 언어가 고정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처방전은 병원에서는 나의 상태를 대변하지만, 연극의 한 장면에 등장한다면 단지 소품에 불과하듯, 그 상황과 맥락에 따라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점을 다시 정리했습니다.

가족유사성 개념도 중요합니다. "구기 종목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하면 야구, 축구, 농구가 모두 포함됩니다. 공을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지만, 우리는 그것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습니다. 일대일 매칭이 아니어도 비슷한 속성을 가진 것들끼리 대칭이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예로 들어보기

모임 초반 한 가지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한국 교육에서 진리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나요? 대원들의 대답은 "외부에 있다"였습니다. 외부에 있는 지식을 받아들이는 태도에서 등급이 매겨지고, 12주를 다 채워야 수료했다고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의문이 생깁니다. 프로세스의 단계를 모두 밟아야만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정해진 정답이 있는 교육에서 우리는 일대일 매칭만 배웁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무한한 매칭이 일어납니다. 시인들은 하나의 단어에서 무한의 의미를 끌어냅니다.

연구의 관점에서도 시사점이 있습니다. 질적 연구에서 사용하는 주제 분석은 가족유사성을 찾아 그룹핑하고 이름을 붙이는 방식입니다. 이런 연구 방법론의 뿌리가 바로 비트겐슈타인에게 있습니다.

나가며

비트겐슈타인의 여정은 놀라운 전환을 담고 있습니다. 전기에서 그는 언어와 세계의 일대일 대응을 믿었고,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후기에 이르러 언어는 삶의 형식 속에서 무한하게 생성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생각도 무한이고, 실제도 무한이고, 실천도 무한입니다. 말도 사실은 무한입니다. 그 무한 중에서 일부의 매칭을 통해 숫자로, 언어로 보여주는 것일 뿐입니다.

다음 주에는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을 읽습니다. 생각의 무한한 시간들, 현실적 계기 속에서 말이 어떻게 정리되고 파악되는지를 함께 탐구할 예정입니다.

함께 나눈 생각들

사물과 말이 매칭되지 않아도, 그것을 언어라 부를 수 있을까

이번 주 중심질문 앞에서 대원들은 대체로 한 방향으로 모였습니다. 매칭이 완벽하지 않아도 언어는 언어라는 것입니다.

한 대원은 언어가 담지 못하는 실재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그 사실이 언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보았습니다.

"언어가 완벽하게 세상을 그려내리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고 오만이다. 그럼에도 언어 이상의 매개가 발명되지 않는 한, 언어는 계속 우리의 소통 수단으로 존재할 것이다."

또 다른 대원은 말로 안 되는 것은 미술과 음악으로 대체된다고 했습니다. 그것 역시 넓은 의미의 언어라는 것입니다. 표현은 비대칭이어도 실상은 균형을 이루고, 함께 쓰려면 그 매칭을 서로 합의해야 한다는 관점도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대칭 구조는 어떻게 무너지지 않을까요. 한 대원은 일대일로 대응하지 않아도 의미가 끝없이 새로 생성되기에 구조가 유지된다고 보았습니다. 삶이 유한하기에 무너지지 않는 것처럼 보일 뿐이라는 통찰도 덧붙였습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쓴다고 우리가 단절되는가? 아니다. 각자의 현상을 설명하는 내러티브를 공유하며 우리는 비대칭 속에서 균형을 찾아간다."

언어의 철학에서 각자의 사회문제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대원들이 비트겐슈타인을 자기 연구 문제로 번역한 지점입니다. 같은 철학자를 읽었는데 도착지는 저마다 달랐습니다.

한 대원은 지금 벌어지는 차별을 설명할 언어 자체가 부족하다고 진단했습니다. 설명할 말이 없어서 차별이 방치된다는 것입니다. 교사 양성 과정의 지식과 실천 사이 괴리를 언어놀이로 읽어낸 대원도 있었습니다. 규칙은 강의실이 아니라 현장의 실천 속에서만 체득된다는 것입니다.

말 한마디로 매장되고 사과를 요구받는 사회,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배제되는 여론, 세대가 바뀌며 뒤집히는 가치의 우선순위. 각자가 붙든 사회문제가 모두 언어의 문제와 맞닿아 있었습니다.

"언어화되지 않는 사회문제는, 과연 사회문제일 수 있는가."

아마, 이 문장이 우리가 연구를 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문제를 부를 이름을 만들고,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며 대안을 찾아가는 것. 연구탐사대원들과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길입니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이번 시즌7은 영미현대철학으로 문을 엽니다! 첫 번째 시즌에서 '영미현대철학'을 진행했는데, 다시 돌아왔습니다. 6번의 산책을 하고 다시 영미를 하는 이유. 아마도 우리가 '연구'탐사대 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첫 철학자가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있어요. 우리가 하는 일이 결국 아직 언어가 없는 사회문제에 언어를 붙이는 일이기 때문이죠. 한 대원이 남긴 "언어화되지 않는 사회문제는 사회문제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우리가 왜 매주 모여 사유를 훈련하는지 다시 확인했습니다. 차별을 부를 말이 없으면 차별이 방치되고, 문제를 부를 이름이 없으면 문제가 묻히니까요. 시즌7 내내 우리는 세상을 우리 언어로 다시 그리는 연습을 이어갈 겁니다.


연구탐사대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연구하는 모든 이를 위한 연구훈련 커뮤니티입니다. 실전형 연구훈련 부트캠프 <연구원정>과 연구자들의 사유훈련 <철학산책>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홈페이지 | 인스타그램 | 유튜브 | 부트캠프 | 철학산책

문의하기: hello@naioth.net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