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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공평한 규칙을 만들 수 있을까
·철학산책철학산책 시즌7

누구에게나 공평한 규칙을 만들 수 있을까

철학산책 시즌7 네 번째 산책 · 정원섭 『존 롤스: 평화를 위한 정의의 철학』


완전한 리셋. 우리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요?

4번째 산책에서는 존 롤스의 철학을 살펴봅니다. 이번 모임의 시작은 하나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어요. 헌법에 대한 수업을 진행하던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헌법책을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상황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사십 명이 하나의 국가입니다. 헌법이 없는 상황입니다. 십 분 후에 폭력배 열 명이 이 교실로 들어옵니다. 어떻게 막을 건가요?"

학생들 사이에서 힘센 다섯 명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지켜주겠다. 우리 말을 들어라." 반대편에서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그건 민주적이지 않습니다. 먼저 규칙을 정해야 하지 않습니까?" 두 그룹이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 조건이 주어졌습니다. "내부에서 전염병이 창궐했다. 열 명이 감염됐고 점점 퍼지고 있다. 어떻게 할 건가?" 학생들은 더 고민에 빠졌습니다. 수업이 끝날 때 교수님은 말합니다. "헌법책을 내려놓으라고 했지, 사용하지 말라고는 안 했다." 헌법을 펼치니 모든 상황에 대한 규정이 이미 다 들어 있었습니다.

왜 평화를 위해 정의가 필요한가

존 롤스는 1943년, 스물두 살에 태평양 전선에 참전했습니다. 전쟁 속에서 그가 품은 물음은 하나였습니다. 어떤 조건에서 서로를 파괴하지 않고 함께 살 수 있는가. 이 물음이 1971년 『정의론』으로 나왔습니다. 롤스가 평생 붙든 과제는 민주 사회를 위한 가장 적합한 도덕적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윤리와 도덕을 구분해봅니다. 윤리는 개인이나 집단이 만들어내는 규칙입니다. 도덕은 그보다 더 상위의 것,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옳음입니다. 공리주의자들은 좋음이 쌓여서 규칙이 된다고 봤습니다. 롤스는 뒤집었습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옳음을 내재하고 있는데, 사회가 그것을 발현하지 못하게 막는다고 본 겁니다.

도덕(자유주의자) vs 윤리 (공동체주의자)

그렇다면 그 옳음이 드러나도록 절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롤스가 제안한 규범적 전환(normative turn)입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같은 말이 아니다

자유주의는 다수의 결정으로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의 권리를 주장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의지가 최종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둘은 충돌할 수 있습니다. 민주적 통제에서 풀려난 자유주의는 반민주적 보수주의로 변질됩니다. 공적 이성의 제약이 없는 민주주의는 대중추수주의로 전락합니다. 롤스의 입헌 민주주의론은 이 두 위험을 동시에 겨냥하는 장치입니다.

피자를 공평하게 자르는 법

롤스 하면 가장 유명한 개념이 무지의 베일입니다.

"피자가 여덟 조각 있습니다. 어떤 절차로 자르면 모두가 만족할 만큼 공평하게 나눌 수 있을까요?"

답은 이렇습니다. 가장 먼저 자른 사람이 가장 마지막에 먹습니다. 이 규칙을 정하면 자르는 사람이 최대한 공정하게 자르게 됩니다. 마지막에 남는 조각을 자기가 먹어야 하니까요.

이것이 무지의 베일의 핵심입니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을지 모르는 상태에서 규칙을 정하면, 누구에게나 공평한 규칙이 나옵니다. 계급, 재능, 가치관을 차단하고 일반적 지식만 허용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원칙을 고를 수 없게 만드는 장치입니다. 이미 적용되고 있는 제도가 있습니다. 배심원단을 무작위로 추출하는 것. 청약에서 생애 최초, 신혼부부, 청년에게 우선권을 주는 것. 롤스가 촉발한 생각이 오십 년 넘게 현실에서 작동하고 있습니다.

가장 취약한 영역으로 전체를 볼 수 있다

롤스의 두 번째 핵심 개념은 차등의 원칙입니다. 가장 소외받는 사람을 먼저 챙기면 사회 전체가 좋아진다는 생각입니다. 이렇게 생각 할 수 있죠. 노인 빈곤이 사라진 나라라면 다른 빈곤한 사람들도 해결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면 그보다 나은 문제들은 이미 해결됐을 테니까요.

조직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의 상태를 알려면 어디를 가면 되냐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답은 화장실이었습니다. 중고등학교 화장실과 대기업 화장실을 비교해 보면 그 조직이 취약한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기아문제를 풀어내는 국제 NGO 단체인 〈기아대책〉도 이 차등의 원칙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공동체에서 가장 소외된 계층은 아동이기 때문에, 아동들의 기본권이 지켜지면 어른이나 청소년의 기본권은 자연스럽게 지켜집니다.

사전에 정할 것인가, 사후에 정할 것인가

롤스는 복지국가 자본주의를 배제했습니다. 많은 학자가 롤스를 복지국가 옹호론으로 읽었지만, 정작 롤스는 이것을 목록에서 배척했습니다. 복지국가 자본주의는 마지막에 세금을 거둬서 나눠줍니다. 재산소유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합의합니다. 상속세와 증여세를 어떻게 할 건지 미리 결정하고, 그다음에 열심히 노동해서 부를 얻게 만드는 겁니다.

차이는 과세의 시점입니다. 사후 과세냐, 사전 과세냐. 복지국가 자본주의에서 최소 수혜자는 어떤 규칙의 정당성을 정할 때 없었습니다. 마지막에 최소 수혜자라는 이름으로 돈을 더 받게 될 뿐입니다. 롤스는 그것을 사전에 정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거라고 봤습니다.

중첩적 합의 — 겹치는 자리만 취한다

『정의론』 이후 롤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질서정연한 사회라는 발상이 비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하나의 원칙에 따라 일관되게 운용되는 사회가 가능한가. 롤스는 이것을 인정하고 『정치적 자유주의』를 썼습니다. 모든 곳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겹치는 지점이 있습니다. 중첩적 합의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최소 수혜자로 합의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동, 노인, 장애인, 차상위 계층, 국가유공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모든 영역에서 이 사람들은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합의가 끝나지 않은 것들도 있습니다. 군 복무자 가산점, 페미니즘 논쟁. 이것들은 중첩적 합의의 중간 원에 들어가느냐 마느냐를 두고 여전히 논의 중입니다.

롤스로부터 적용할 수 있는 연구하는 법

롤스의 철학을 생각하며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봅니다.

첫째, 연구 질문을 기본구조에서 찾습니다. 개별 행위자의 선의나 역량이 아니라, 규칙과 제도가 이익과 부담을 어떻게 배분하는지를 단위로 삼습니다.

둘째, 무지의 베일을 설계 도구로 씁니다. 내 위치를 모른다면 이 정책에, 이 사업에 동의하겠는가. 이해관계자 워크숍과 시나리오 설계의 절차로 번역됩니다.

셋째, 사전 개입과 사후 보정을 구분합니다. 성과를 사후에 재분배할 것인가, 출발 조건을 미리 분산할 것인가. 사업 평가 지표 자체가 달라집니다.

넷째, 합의의 내용보다 정당화 방식을 봅니다. 서로 다른 신념을 가진 참여자가 각자의 이유로 같은 결론에 동의할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삼습니다.

롤스를 읽는 일은 완성된 체계를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미완의 기획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함께 나눈 생각들

누구에게나 공평한 규칙을 만들 수 있을까 — 불가능을 인정한 자리에서

함께한 대원들의 답은 대체로 "불가능하다"에서 출발했습니다. 개개인의 성향과 정의, 가치관이 다르니 누구에게나 공평한 규칙은 있을 수 없고, 누군가는 결국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절차적 노력은 할 수 있어도 그것이 모두를 만족시킨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는 답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는 진단이 곧 포기로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절대적 평등은 이루어질 수 없지만 그것을 계속 추구할 때 더 나은 사회에 가까워진다는 답, 과정이 순탄치 않아도 계속 만나서 이야기하면 가능하겠다는 답이 있었습니다. 다만 시대가 변하면 규칙도 계속 업데이트되어야 한다는 단서가 붙었습니다.

"어제 공정했는데 오늘 공정하지 않은 사회가 될 수도 있다."

한편에서는 질문 자체의 모순을 정면으로 붙들었습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한'과 '규칙'은 서로 당깁니다. 모든 것을 옳다고 하면 무용지물인 규칙이 되고, 질서를 세우려 하면 누군가를 소외시킵니다. 공평한 규칙은 '해야 할 것'보다 '하지 말아야 할 것', 침범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균형에서 찾아야 한다는 제안도 이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이 규칙의 균형점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것이, 진짜 '민주사회를 위한 도덕적 기초'이지 않을까."

무지의 베일에 대한 유보도 여럿이었습니다. 위기가 자신에게 닥칠 거라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지의 베일로 설득하기는 어렵다는 지적, 권리와 권리가 충돌할 때 인간의 본성 때문에 난장판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최소수혜자의 비중이나 영향력이 낮은 지역 공동체에서는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조차 없거나 표면적으로만 준수된다는 현장의 관찰도 나왔습니다. 롤스의 사상만으로 이 복잡한 세상을 감당할 수 있는지, 비인간은 어디에 놓이는지를 묻는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때론, 우리는 '무지의 베일' 속에서 가장 합당한 선택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연구탐사대가 바라보는 연구계에서의 한계는 학계의 관심사와 평가 기준에 맞춰 연구들이 진행되다 보니 연구가 되어지지 않는 영역 'Undone Science'가 생겨나 버린 현실입니다. 이런 영역들은 대부분 소외된 자들의 영역이죠. 만약 우리가 어떤 전제도 갖지 않고 주제를 고른다면, 학계의 평판이나 스펙, 또는 연구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모두 '공동체를 위한 연구'를 하지 않을까요?

다음 산책에서는 롤스를 비판하는 공동체주의자들을 만납니다.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와 함께 무연고적 자아라는 롤스의 전제 자체를 흔들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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