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은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는' 것이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철학으로 보는 존재와 연결
쌀알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면
아주 작은 쌀알 하나가 우주 전체를 품고 있다고 할 때, 부분과 전체의 경계는 어디서 갈라지는가?
쌀알 하나를 떠올려볼까요? 한 달 전만 해도 벼에 달려 있었고, 그 전에는 뿌리 속 입자였고, 더 전에는 흙의 토양이었습니다. 쌀알이라는 작은 존재 안에는 우주 전체의 연결망이 들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 변환이 일어나는 걸까요?
지난 주 비트겐슈타인과 함께 언어와 세계의 일대일 매칭을 보았다면, 이번 주 화이트헤드는 그 세계 자체가 어떻게 생성되는지를 묻습니다. 『처음 읽는 영미현대철학』 문창옥 교수의 장,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 생성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함께 읽었습니다. 이번 챕터를 작성한 문창옥 교수님이 한 유튜브 채널에서 화이트헤드의 철학으로 40강 강의를 진행할 만큼 짧게 소화하기 어려운 철학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을 어떻게 느끼실까?
화이트헤드의 과정신학이 그리는 신의 모습을 보면, 완전한 일체를 볼 수 있습니다. 개인의 아픔이 하나님의 아픔이 되는 것과 같이 온 우주, 생명이 모두 그의 몸이라는 점이죠. 세상과 분리되어 저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과 연결되어 함께 아파하는 존재. 마치 지브리 애니메이션 '원령공주'에서 숲의 신 시시가미가 닿는 곳마다 죽이기도 하고 다시 꽃을 피우기도 하듯, 신이라는 존재를 이 세상의 일부로 여기는 것입니다.
한 번 발 담근 강물에 다시 발을 담글 수 있을까?
화이트헤드를 이해하려면 헤라클레이토스의 유명한 명제를 떠올려야 합니다. "한 번 강물에 발을 담그면 다시 그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없다."
아까의 강물과 지금의 강물은 구성이 다르고, 시간과 공간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그것을 '한강'이라고 부릅니다. 물은 계속 흐르는데, 우리가 강이라고 인식하는 패턴은 유지됩니다. 촛불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소와 산소가 들어오고 빛과 열이 나가며, 머무는 물질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불꽃이라는 형태는 유지됩니다.
"일정한 모양을 지키고 지속하는 것은 실체가 아니라 패턴화된 과정입니다."
이것이 화이트헤드 철학의 핵심입니다. 세계를 고정된 '사물의 세계'가 아니라 매번 변화하는 '사건'으로 정의하는 것, '무엇이 있다'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난다'로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현실적 계기와 경험의 존재론
"나는 경험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이 명제가 화이트헤드 철학의 출발점입니다. 존재는 완성된 실체가 아니라, 경험이라는 현실적 계기 속에서 계속 생성하기도 하고 소멸하기도 하는 과정입니다. 모든 계기가 세계 전체를 끌어안고 생성되는 무한한 과정의 연속인 것입니다.
십 년 전에 친했던 친구가 지금까지 친한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철학산책에서 함께 만난 우리들이 십 년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처럼 과정 자체에서 경험이 매우 중요합니다.
영원한 객체, 창조성, 그리고 신
화이트헤드의 세 가지 핵심 구성요소는 창조성, 영원한 객체, 신입니다.
레고박스를 떠올려보세요. 엄마가 사준 레고박스 버전 1이 있으면, 우리의 창조는 그 안에 있는 조각들로 제한됩니다. 스타워즈 레고 조각이 없는 겨울왕국 세트로는 스타워즈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이 레고 조각 하나하나가 바로 영원한 객체입니다. 신이 처음에 만들어놓은 순수한 가능태들이죠.
창조성은 이 객체들을 연결하는 힘입니다. 만물이 존재하려고 하는 약동, 코나투스(conatus)라고 부르는 그 힘이 창조성입니다. 그리고 신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목적인이면서, 동시에 이 판 안에 있으면서 계속 만들어져 가는 존재입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개념이 애드버전(ad-version)과 어버전(a-version)입니다. 신이 좋아하는 패턴, 창조성이 더 올라가는 것은 버전업(애드버전)이 됩니다. 반대로 패턴이 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은 버전이 없어지는 어버전입니다. 영미식 사고에서 버전 업으로 발전시켜나가는 게 자연스러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파악(prehension)과 네 가지 위상
현실적 계기에서 현실적 존재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 파악(prehension)입니다. 모든 계기가 세계 전체를 끌어안고 생성된다는 것, 그 끌어안음의 방식이 바로 파악입니다. 네 가지 위상으로 진행됩니다.
첫째, 호응적 위상. 카페 문을 열었을 때 갓 구운 쿠키 냄새가 코를 때립니다. 물리적 자극을 받아들이는 순수한 느낌입니다.
둘째, 개념적 위상. 그 느낌에서 '달콤하다'라는 순수한 성질을 추출합니다.
셋째, 비교적 위상. "어? 이런 달콤한 기억이 언제 있었지? 아, 엄마가 구워주던 쿠키 맛 같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과 비교합니다.
넷째, 만족의 위상. "이거 맛있는 쿠키야, 먹어보자." 또는 "이건 내가 원하는 쿠키가 아니야."
이 네 가지가 매 순간 반복됩니다. 한국이 유행에 예민하고 인터넷 속도가 빠른 것도, 이 호응-개념-비교-만족의 속도가 현실적 계기 안에서 엄청나게 빠르기 때문입니다.
넥서스와 소사이어티: 연결의 두 층위
개체들이 연결되는 방식에도 층위가 있습니다. 넥서스는 느슨한 연결이고, 소사이어티는 질서 있게 반복되는 결합체입니다.
미국의 배심원 제도가 작동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무작위로 추첨한 시민 누구를 뽑아도 사회의 구성화된 일원이기 때문에, 이미 현실적 계기에서 창조성을 가지고 모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판단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넥서스 정도의 느슨한 연결만 있는 사회에서 떨어져 있는 점을 뽑으면 배심원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겠죠.
"이런 사회를 만들려면 어떻게 교육해야 할까?" 이것이 미국이 처한 교육현실이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쌀알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
처음의 중심질문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쌀알 하나를 통해 그 쌀알이 만들어지는 계기들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쌀알이라는 영원한 객체 안에는 순수한 가능태들이 들어있고, 그것은 우주 전체의 연결망 속에 있습니다. 파악을 통해 쌀알은 자신의 인과적 과거 전체를 끌어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넥서스에서 소사이어티로 갈까요? 우리 개인이 사회 속에서, 그 사회가 모여서 국가로, 국가들이 모여서 세계로 발전할 때 그 경계는 어디일까요?
화이트헤드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그 경계를 찾는 것, 패턴을 찾는 것이 바로 연구라고 말합니다.
연구의 방식이 담겨 있다
우리의 연구방식은 화이트헤드의 관념의 모험과 닮아 있습니다. 데이터가 서로 연결되면 정보가 되고, 정보들이 일정한 패턴을 가지면 지식이 됩니다. 그리고 연구는 이 지식, 즉 패턴을 찾는 것이 목적입니다.
물리적 느낌에서 개념으로, 개념에서 비교로, 비교에서 명제적 판단으로 올라가는 과정. 데이터를 모으고, 그룹핑하고, 코드를 매기고, 연결을 보는 것. 이것이 화이트헤드가 말한 지성적 느낌으로서의 연구 결과입니다.
"일 잘하는 사람은 일 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줍니다. 장애물의 먼지를 제거해주고요. 교육에서도 그렇습니다. 과정이 중요하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고, 그 안에서 연결되는 사건과 관계가 중요하다는 게 화이트헤드 철학의 핵심입니다."
함께 나눈 생각들
쌀알은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가
중심질문 "부분과 전체의 경계는 어디서 갈라지는가"를 두고 대원들 사이에서 다양한 성찰이 오갔습니다.
한편에서는 쌀알을 무엇으로 바라보는가에 따라 경계가 달라진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쌀알을 이루는 계기들, 그리고 그 쌀알이 하나의 완전한 객체가 되어 새롭게 만들어낼 현실적 존재들을 볼 때 우리는 쌀알이 온 우주를 품는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존재하는지, 그걸 만들어내는 사람, 파악하게 하기 위한 전달이 일치될 때 온전한 구분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관점도 있었습니다. 쌀알이 탄소 화합물의 상태로 화석화되어 더 이상 쌀알로서의 본래 기능을 하지 못할 때, 즉 애드버전이 아니라 어버전이 될 때 경계가 생긴다는 해석입니다.
본질과 갱신의 긴장
무형문화유산을 연구하는 대원은 이 질문을 자신의 문제의식과 연결했습니다. 대표 개념을 구성하는 여러 부분 요소들이 본질을 해치지 않으면서 상위버전으로 갱신되는 바람직한 경계는 어떻게 정할 수 있는가? 장인-도제 방식으로 지정된 종목과 달리, 전승공동체로 지정된 종목은 본질성도 모호하고 구성원도 불특정다수여서 질서 있게 존속되며 버전업되기가 쉽지 않다는 고민이었습니다.
사회문제는 왜 반복되는가
사회문제의 재발과 변이를 연구하는 대원은 화이트헤드를 통해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회문제라는 것은 무엇인가? 매번 창조성과 신과 영원한 객체가 현실적 계기에서 만날 때, 그 가운데에서 우리는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는가?
또 다른 대원은 왜 우리 사회가 서로 반목하게 되었는지를 물었습니다. 소사이어티를 만들어야 하는데 넥서스도 필요하지 않은가? 역설적으로 우리는 이 부분이 부족하지 않은가? 제대로 된 과정철학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었습니다.
연탐대장의 단상노트
시즌6 한국현대철학을 마치고 시즌7 영미현대철학으로 돌아왔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에서 화이트헤드의 생성으로, 언어와 세계의 매칭을 넘어 그 세계 자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묻는 여정이에요.
우리가 하는 연구가 결국 현실적 계기 속에서 패턴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면, 사회문제 해결도 완성된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경험하고 연결하고 버전업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있다가 아니라 무엇이 일어난다"는 명제가 연구의 방식 그 자체라는 말이 계속 맴돕니다. 다음 주 토마스 쿤과 함께 패러다임 전환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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