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발적 협력을 위한 새로운 경로
- 고착을 넘어, 새로운 경로
-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지점들
고착을 넘어, 새로운 경로
앞선 장에서는 시스템 체인지의 가능성을 높이는 협력의 방식으로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을 제시했습니다. 시스템 체인지는 단일 조직이나 개별 사업의 성과만으로 일어나기 어렵고, 서로 다른 주체들이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연결되며 새로운 관계와 실행의 패턴을 형성할 때 그 가능성이 확장됩니다. 그러나 자원의 논리, 섹터의 경계, 조직 단위 리더십의 관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환경에서는 기존과 다른 이러한 협력 방식이 쉽게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본 장은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이 가능해지는 출발점을 살펴봅니다. 창발적 협력은 단순히 더 많은 주체가 모이거나 협력의 필요성에 동의한다고 해서 일어나지 않습니다. 변화의 주체인 조직과 개인이 기존 시스템의 자원 흐름, 성과 기준, 섹터 경계, 역할 구조를 그대로 반복하지 않고, 자기 위치에서 다른 질문과 실천을 시작할 때 비로소 변화의 조건이 만들어집니다. 시스템 체인지는 거시적 구조의 변화로 나타나지만, 그 변화의 초기 조건은 이처럼 조직과 개인이 자신의 위치에서 문제를 다르게 인식하고, 다른 기준으로 판단하며,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 ‘새로운 경로’에 있습니다.
새로운 경로가 된다는 것은 시스템 안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는 언어와 자원, 관계와 판단의 방식을 다르게 조합하고 실행함으로써, 기존 시스템이 반복해 온 경로와 다른 가능성의 통로를 만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개인과 조직이 여럿 등장하고 서로 연결될 때, 협력은 기존 방식으로 수렴되지 않고,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이때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은 각자의 자리에서 형성된 새로운 경로들이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만나며 예기치 않은 관계와 실천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을 변화시키는 지점들
시스템은 눈에 보이는 사건이나 개별 사업만으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문제로 인식하는지, 누가 발언하고 결정하는지, 어떤 실험이 허용되는지, 무엇이 성과로 인정되는지, 자원이 어떤 기준과 시간표에 따라 흐르는지와 같은 더 깊은 작동 원리에 의해 유지됩니다. 이러한 지점들은 시스템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일종의 레버리지 포인트(leverage point)입니다. 그 크기나 영향력이 작아 보이는 개입도,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효과적으로 공략할 때 변화의 파급력은 커질 수 있습니다.
시스템 변화의 개입 지점에 관한 기존 논의들은 공통적으로 변화가 눈에 보이는 제도나 사업의 조정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해 왔습니다. 가령 시스템을 움직이는 더 깊은 구조와 목표, 사고방식에 주목했고(Meadows, 1999; 2008), 또 다른 연구들은 이를 시스템의 설계와 의도, 관계와 권력, 자원 흐름과 학습 구조의 문제로 확장해 왔습니다(Abson 외, 2017; Kania, Kramer & Senge, 2018). 최근 논의 역시 개별 프로그램의 확산을 넘어, 행위자들을 연결하고, 자원을 정렬하며, 문제를 설명하는 언어와 성과를 판단하는 방식을 바꾸는 실천으로 시스템 변화를 이해하고 있습니다(Skoll Foundation· SSIR, 2024–2025; Savaget & Skoll Centre Systems Change Observatory, 2020).
이러한 논의들은 시스템 변화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변화의 대상을 더 깊고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다만 기존 프레임을 생태계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놓인 구체적인 조건과 현장의 경험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개입 지점은 보편적 모델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실제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제약과 가능성 속에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특히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확인된 협력의 어려움, 자원 구조의 제약, 제도와 평가 관행의 압력을 고려할 때, 어떤 지점이 실제 개입 가능한 레버리지 포인트가 될 수 있는지를 우리 생태계의 맥락 속에서 재구성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에 본 연구는 시스템이 반복적으로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핵심 지점을 다섯 가지 레버리지 포인트로 제시합니다. 첫째, 문제를 이해하고방향을 설정하는 비전과 방향성, 둘째, 관계와 권한이 배분되는 관계와 권한, 셋째, 새로운 시도와 학습이 가능해지는 실험과 학습, 넷째, 변화가 더 큰 규모로 확장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 다섯째, 무엇이 가능하고 지속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자원입니다. 이 다섯 가지 지점은 시스템의 작동 방식을 재검토하고, 현장에서 새로운 개입을 시도하며, 생태계 차원에서는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입니다. 각 조건별로 현장에서 적용해 볼 수 있는 구체적인 개입의 지점도 함께 정리했습니다.
1비전과 방향성:협력의 방향이 시작되는 조건
문제를 정의하는 방식은 협력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동일한 문제 정의에 머물러 있으면 협력의 방식도 반복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조건에서 변화의 주체는 문제에 대한 전제와 익숙한 해석을 해체하며, 함께 바라볼 방향을 재설계해 볼 수 있습니다.
1. 인식의 전환과 문제 재정의 Reframing
현장에서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만, 그 원인을 개인의 역량이나 일시적 조건에서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더 많은 노력이나 더 나은 실행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지만, 실제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경험을 반복해오기도 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해결 방식을 더 정교하게 다듬는 일에 그치지 않고, 문제를 바라보는 전제 자체를 다시 묻는 일입니다. 무엇이 부족한가 보다 무엇이 이 반복을 만들어내는가를 살펴볼 때, 문제는 개인의 한계가 아니라 시스템의 작동 방식으로 다시 보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전환이 일어날 때, 주어진 해답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을 넘어 문제 자체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릴 수 있습니다.
2. 기존 내러티브의 해체 Deconstructing
문제가 새롭게 정의되기 시작하면, 그동안 문제를 설명해 온 익숙한 해석도 함께 재검토될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의 책임, 효율성의 부족, 자원의 한계와 같은 설명은 현장의 일부를 보여줄 수 있지만, 문제가 반복되는 구조를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해석은 완전히사라지기보다 조금씩 수정된 형태로 계속 유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 필요한 개입은 기존의 설명을 보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설명이 어떤 관행과 자원 흐름을 정당화해 왔는지 살펴보는 일입니다. 익숙한 해석이 느슨해질 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문제 인식에 균열이 생기고, 이전에는 고려되지 않았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립니다.
3. 공동의 비전 수립 Co-Visioning
서로 다른 위치의 주체들이 함께 바라볼 공동의 방향을 수립해 볼 수 있습니다. 기존의 해석이 느슨해졌다고 해서 새로운 방향이 자동으로 형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경험과 언어 안에서 개별적으로 움직이면, 변화의 가능성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누군가가 정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서로 다른 주체들이 각자의 경험을 가지고 참여해 지금 함께 바꾸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확인해 가는 과정입니다. 공동의 비전은 차이를 없애고 하나의 답으로 수렴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해석과 실천을 허용하면서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2관계와 권한:협력의 흐름을 바꾸는 조건
협력은 단순히 주체들을 연결하는 일이 아닙니다. 협력의 과정에는 자원, 정보, 발언권, 결정 권한의 차이가 함께 작용합니다. 이러한 차이를 살피지 않은 채 협력을 시도하면, 한계를 가진 기존의 권한 구조가 그대로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변화의 주체는 권한이 어떻게 배분되고 작동하는지를 살피며, 협력의 구조를 조율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위치와 영향력도 함께 점검해 볼 수 있습니다.
1. 권력 구조에 대한 진단 Diagnosing
협력을 위한 자리가 마련되더라도, 실제 논의를 주도하는 사람들은 늘 비슷하고 중요한 결정은 자원이나 권한을 가진 주체에게 집중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개입은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맺어지고 권한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입니다. 누가 말하고, 누가 결정하며, 누구의 경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지를 살필 때, 협력 안에서 반복되는 권한 구조를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협력이 늘더라도 기존의 관계와 권한 배분 방식이 반복될 가능성이 큽니다.
2. 협력 구조의 조율 Orchestrating
다양한 행위자가 각자의 위치와 역할을 유지하면서도 공동의 목적을 향해 함께 움직일 수 있도록 협력의 구조를 설계하고 조정하는 개입입니다. 이는 누가 어떤 결정을 하고, 자원이 어떻게 배분되며, 경험과 학습이 어디에서 공유될지를 함께 정리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권한과 책임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조정하고, 협력이 지시나 수행의 관계가 아니라 상호 존중과 공동 책임 위에서 작동할 수 있도록 균형을 찾는 일이 중요합니다. 생태계에는 협력의 접점은 많지만 실제 결합은 약하고, 협력 경험은 많지만 이를 지속적으로 조율하는 구조는 충분하지 않다는 인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협력이 일회성 만남이나 상징적 연대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는 관계의 방식, 의사결정의 절차, 함께 배우고 조정하는 과정을 지속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3. 자기 위치에 대한 점검 Recognizing
관계와 권한을 새롭게 조정하려는 주체 역시 협력 안에서는 하나의 영향력 있는 위치를 갖게 됩니다. 생태계에서는 참여의 가치가 널리 인정되어 왔지만, 실제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에서는 기존의 위계나 전문가 중심의 관성이 반복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개입은 조율의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 혹은 개인이 어떤 권한을 가지고 있으며, 그 권한이 협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성찰하는 일입니다. 때로는 판단을 독점하지 않고 물러서거나, 권한을 나누고, 다른 주체가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선택도 필요합니다. 자기 위치에 대한 점검이 협력의 일부가 될 때, 참여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제 결정 과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집니다.
3실험과 학습:협력의 미래를 바꾸는 조건
실험은 단순히 새로운 활동을 시도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시도가 가능하도록 하는 조건을 만드는 일에서 시작됩니다. 단기간에 성과를 입증해야 하고 실패가 쉽게 허용되지 않는 구조에서는 성공 가능성이 높은 방식들이 반복되기 쉽습니다. 협력 역시 새로운 조합을 탐색하기보다 이미 검증된 형식에 머물 가능성이 커집니다. 이때 변화의 주체는 실험이 가능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고, 실패의 경험을 학습으로 축적하며, 그 학습이 다음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개입을 시도할 수 있습니다.
1. 실험 공간의 조성 Creating
실험 공간을 조성한다는 것은 성과 압박과 즉각적인 확산의 요구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여지를 만드는 일입니다. 이러한 여지가 반드시 제도적인 개편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과 중심으로 운영되던 사업 안에 일부 자원을 탐색형 시도로 배분하거나, 예산 집행 방식과 의사결정 절차를 한시적으로 조정하거나, 성과지표를 먼저 확정하기보다 일정 기간 현장을 살피며 가설을 다듬는 시간을 두는 방식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작은 단위의 조정은 기존 시스템이 당연하게 유지해 온 규칙과 관행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이전에는 시도되기 어려웠던 실험과 새로운 협력의 형식이 시작될 수 있게 합니다.
2. 실패의 자산화 Accumulating
실험의 결과, 특히 실패의 경험이 사라지지 않고 학습으로 축적되도록 하는 개입입니다. 많은 시도는 개별 프로젝트의 경험으로만 남고, 실패한 시도일수록 충분히 공유되거나 해석되지 못한 채 사라지기 쉽습니다. 성공 사례는 반복적으로 확산되지만, 실패의 이유와 조건에 대한 해석은 조직 또는 개인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시스템 체인지에서 중요한 학습은 성공 사례뿐 아니라 실패와 시행착오 속에서도 있습니다. 무엇이 작동하지 않았는지, 어떤 조건에서 시스템이 저항했는지, 어떤 가정이 어긋났는지를 살펴볼 때, 실패는 다음 실험을 설계하는 구체적인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3. 학습의 순환 Circulating
축적된 학습이 개인의 경험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선택의 근거로 다시 사용되도록 순환시키는 개입이 필요합니다. 즉, 실패의 이유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로부터 얻은 학습이 다음 실험의 설계와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하는 일입니다. 또한 비슷한 문제를 다룬 여러 시도를 함께 비교하고, 실패와 수정의 과정을 공통의 형식으로 정리하며, 그 결과가 다음 실험의 설계, 자원 배분, 전략 조정 과정에 반영되도록 해야 합니다. 학습이 보고서에 머무르지 않고 다음 사업 기획, 자원 배분 결정에서 활용될 때, 그것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협력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공동의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4제도:협력의 규모를 넓히는 조건
현장의 경험이 제도의 언어로 정리되지 않으면, 제도 논의의 장으로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의미 있는 협력 모델이 만들어지더라도 제도 안에 자리 잡지 못하면 예외적인 사례로 남기 쉽습니다. 이 지점에서 변화의 주체는 현장의 문제를 제도의 언어로 옮기고, 현장과 제도 사이의 접점을 만들며, 변화가 규칙과 구조 안에 지속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개입을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1. 제도적 언어로의 번역 Translating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부딪히는 행정 규제나 제도적 병목을 개별적인 어려움에 머물게 하지 않고, 공통의 구조적 문제로 정리해 제도의 언어로 옮기는 개입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현장에는 “이 구조 안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기 어렵다”는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만, 그것이 정책 설계자나 입안자가 이해하고 판단할 수 있는 형태로 정리되지 않으면, 제도화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따라서 무엇이 반복적인 제약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기존 지원 구조만으로는 왜 충분하지 않은지, 현장의 지식이 왜 의사결정의 근거로 반영되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정리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번역을 통해 현장의 경험은 개별 사례를 넘어 제도 변화의 근거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2. 현장과 제도 간 연결 Bridging
현장과 제도, 정책과 실천 사이를 오가며 서로의 언어와 판단 기준을 연결하는 개입입니다. 현장의 경험이 제도 논의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입법가, 행정 관료, 정책 설계자 등과의 접점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현장의 문제를 직접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합니다. 시스템 체인지 사례로 자주 인용되는 캘리포니아 인다우먼트(The California Endowment)의 대규모 지역 기반 이니셔티브인 BHC(Building Healthy Communities) 사례에서도 정책 변화는 변호사, 활동가, 정치인, 청소년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연결되고, 그 관계를 바탕으로 공동의 정책 의제가 형성되면서 가능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처럼 제도권과의 유기적인 관계가 촉진될 때, 현장의 경험은 제도 변화의 언어로 옮겨지고 제도는 현실을 더 잘 반영하는 방향으로 조정될 수 있습니다.
3. 변화의 제도화 Embedding
의미 있는 실험과 협력 모델이 일회적 사례에 머물지 않고, 제도와 규칙 안에서 반복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제도화하는 개입이 필요합니다. 현장에서 새로운 시도가 축적되더라도 그것이 제도적 조건으로 이어지지 않으면, 변화의 지속성과 확산 가능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법이나 정책을 바꾸는 일뿐만 아니라, 문제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주체에게 판단의 권한과 실행의 여지를 부여하고, 여러 주체가 함께 실험하고 학습하는 협력 구조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또한 개별 사업의 성과만이 아니라 협력을 통해 줄어든 중복, 빨라진 조정, 새롭게 형성된 관계와 인프라 같은 과정의 변화도 평가에서 인정될 필요가 있습니다. 제도가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보상하는지가 달라질 때, 협력은 개인의 헌신에 기대는 상태를 넘어 규칙과 구조에 의해 지지되는 방식으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5자원:모든 협력의 시작과 끝을 만드는 조건
시스템은 자원의 흐름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게 인정되고 어떤 방식이 반복되는지는 자원이 어떤 기준과 방식으로 배분되는지에 따라 달라집니다. 협력의 형태 역시 자원의 흐름과 분리되어 있지않습니다. 따라서 변화의 주체는 자원이 따라가는 가치의 기준을 다시 살피고, 그 기준이 평가 방식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점검하며, 자원이 투입되고 회수되는 시간의 구조를 새롭게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1. 가치 기준의 재정의 Redefining
어떤 시도에 자원이 배분될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을 다시 세우는 개입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나타났듯이, 현재 생태계에서는 장기적 변화보다 단기 성과가, 탐색과 실험보다 예측 가능한 결과가 더 쉽게 지원받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새로운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더라도, 실제 자원은 익숙하고 설명하기 쉬운 방식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이러한 지점에서 필요한 개입은, 자원의 양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무엇을 가치 있는 시도로 인정할 것인가를 다시 정하는 일입니다. 가치의 기준이 달라질 때, 자원이 향하는 협력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2. 평가 방식의 재설계 Redesigning
새롭게 설정한 가치 기준이 실제 측정과 평가 방식에 반영되도록 구조를 다시 설계하는 개입도 필요합니다. 현재의 평가 체계는 설명하기 쉽고 측정하기 쉬운 결과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어, 협력과 조정, 학습처럼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충분히 드러나거나 인정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결과 변화에 중요한 조건들이 성과로 포착되지 못하거나, 기존의 방식이 반복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개별 사업의 결과뿐 아니라 중복 감소, 관계 형성, 학습의 축적처럼 협력 과정에서 일어난 변화도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평가 기준은 어떤 시도가 지속되고 반복될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장치입니다.
3. 자원 타임라인의 재조정 Readjusting
자원 타임라인의 재조정은 자원이 투입되고 유지되는 기간과 방식을 다시 맞추는 개입입니다. 시스템 체인지에 가까운 시도일수록 결과가 늦게 나타나고, 조정과 학습에 시간이 필요하며, 성과를 명확하게 입증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단기 성과와 빠른 입증을 중심으로 하는 자원 구조에서는 이러한 시도들은 초기 단계부터 선택되기 어려운 조건에 놓이기 쉽습니다. 따라서 자원의 총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원이 제공되는기간과 지원의 방식을 다르게 구성하는 개입이 필요합니다. 한 조직의 사업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넘어 협력체 전체를 지원하거나, 실행 비용뿐 아니라 학습과 조정에 필요한 기반 비용을 인정하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원 구조가 마련될 때, 기존에는 채택되기 어려웠던 시도가 시작되거나 지속될 수 있고, 협력 또한 개인의 헌신이나 우연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지지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스템 체인지는 한 조직이나 개인의 성과, 또는 단일한 해법만으로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주체들이 연결되고, 각자의 위치에서 기존과 다른 개입을 통해 ‘새로운 경로’가 될 때, 새로운 협력의 패턴이 만들어지고 시스템 체인지의 가능성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협력의 양적 확대가 아닌 협력 방식의 전환입니다. 자원의 논리에 따라 형성되는 협력, 섹터 경계 안에 머무는 협력, 조직 단위 리더십에 의존하는 협력을 넘어,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경계를 가로지르고 생태계 차원의 리더십을 형성하는 협력이 필요합니다. 이는 협력의 중심에 무엇을 두고 서로 연결될 것인지, 누구의 언어와 판단이 반영될 것인지, 자원과 권한이 어떻게 배치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을 바꾸는 일입니다.
이러한 협력은 추상적인 선언이나 거시적인 설계만으로 실현되지 않습니다. 개인과 조직이 각자의 위치에서 문제를 다르게 정의하고, 관계와 권한을 새롭게 배치하며, 실험과 학습의 여백을 만들고, 제도와 자원의 흐름에 개입할 때 그 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로는 시스템 바깥에서 완성된 대안을 가져오는 일이 아니라, 시스템 안에서 이미 작동하고 있는 언어와 자원, 관계와 판단을 다르게 조합하는 실천입니다.
이러한 시도들이 서로 연결될 때, 생태계 안에는 다양한 협력의 패턴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새로운 경로를 추구하는 개인과 조직이 각자의 맥락에서 미션 중심의 협력을 시도하고, 그 결과 서로 다른 관계와 실험, 자원 흐름이 축적될 때 시스템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반응할 가능성을 갖게 됩니다. 협력 패턴의 다양화는 단순히 협력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이 다르게 작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확보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국 시스템 체인지의 가능성은 각자의 자리에서 새로운 경로가 되려는 시도들이 만나고, 공동의 목적을 중심으로 연결되며, 생태계 안에 다른 협력의 문법을 축적해갈 때 점차 커집니다. 시스템 체인지는 여전히 가능성의 영역에 있지만, 우리는 미션 중심의 창발적 협력과 새로운 방식의 개입을 통해 시스템 체인지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